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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가로다'(가로되)가 말뿌리가 같다

by 뿌리를찾아서 2023.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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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름'과 '가르다'가 뿌리가 같은 이유

구름을 뜻하는 한자는 두 개가 있다. 운(雲)과 운(云)이다. 云의 다른 뜻은 말하다가 있다. 그런데 왜 말하다를 뜻하는 云이 구름을 뜻하는 것일까? 云에 雨가 결합되어 雲이 구름을 뜻하는데, 云 자체도 구름을 뜻한다. "운(云)을 띄우다" 무엇을 말하다라는 뜻인데, 왜 구름일까? 

 

원래 갑골문자가 만들어진 시기에는 云의 뜻은 구름이었다.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겠지만, 그 당시 云의 소리도 '구름'(gureum)과 가까운 소리였다. 이 글자는 시간이 지나 후대에 이르러 말하다, 이르다’로 뜻이 전이된다. 이유는 구름이라는 소리와 '말하다'를 일컫는 소리가 비슷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이 설명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구름과 비슷하고 '말하다'를 뜻하는 소리가 어디에 있는가? 

 

현재 중국어로 구름 云, 雲 등의 소리는 yún 소리다. 우선 갑골문자 소리와 완전히 다른 소리다. 'g'로 시작하는 소리가 아니고, 'y'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 공산당은 1950년대에 간자체를 도입하면서 雲를 없애고 云으로 '구름, 말하다'를 뜻하게끔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현재 중국에서 쓰는 소리로는 云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云의 갑골문자 모양은 아래와 같다.  

 

 

구름을 나타내는 갑골문자
구름을 표현한 갑골문자

 

하늘에 떠다니는 뭉게구름과 같고 위에 두 선은 하늘을 뜻한다. 하늘 아래 둥둥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묘사한 그림이다. 현대 미술의 거장인 '피카소'도 갑골문자에 매료되어 여러번 언급했을 정도로 갑골문자는 그림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작품과도 같다. 그가 십대 때에 갑골문자가 세상에 나왔고, 한 때 유럽에서 새롭게 발견된 갑골문자에 대해 선풍적 인기가 있던 터라 작게나마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이 문자의 소리는 'ɢʷər'다. 프랑스, 미국 학자들인 사가르트와 벡스터가 연구하여 내논 결과물이다. 과연 3천 6백 년 전에 이런 소리가 있었는가? 반문한다면 정확히는 '모른다'가 답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서 녹음을 해 오지 않는 이상 정확하다고 답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추론하여 비슷한 발음을 찾아 낼 수는 있다. 그 작업을 한 이들이 '사가르트 와 벡스터' 다. 이들도 그냥 무턱대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중국의 자료들과 언어학 자료들을 검토하여 낸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존중할 가치가 있다.   

'ɢʷər'는 우리말로 음역하면, '궈르', 구어르, 가아(어)르, 가르'등 안에서 소리내어진다. "정확히 어느 것이다"라고 선택하는 것보다 소리의 진폭을 염두해 두는 것이 云을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하다. 이 소리 진폭안에 '구름'이 있다. 즉 구름은 3천 6백 년 전에는 '궈르, 구어르, 가어르' 등에서 나는 소리주파수 영역과 비슷하게 들렸다는 이야기다. "구름에서 '구'를 강조하면 받침 'ㅁ'이 약하게 들린다."것도 참조하기를 바라며, 이런 식의 설명이 견강부회(牽强府會)하는 것도 아님을 기억했으면 한다.

 

역으로 구름이라는 소리에 가깝게 사가르트와 벡스터가 진실을 밝힌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15세기에도 구름은 구름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변하지 않은 소리였고, 수 천년 이전에도 같은 소리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2. '구름'의 핵심 소리는 '구르'

어떠한 길로 가서 '구름'의 옛 소리를 보더라도 현재 밝혀진 'ɢʷər'소리가 핵심 소리인것은 자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왜 云의 3천 6백 년 전 소리가 우리말 '구름'과 같냐는 것이다" 뜻은 이미 알고 있어 의문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왜? 소리가 같을까? 

 

여러 번 생각해도 답은 하나다. "이 글자를 만든 사람들이 현재 우리가 쓰는 한국어와 같은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한자를 만든 사람들이 중국인들의 조상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페니키아인이 만든 알파벳이 서양 언어 글자의 초석이 되었고 문명의 개화를 이끌었듯이, 한민족 선조들이 만든 한자가 동북아시아의 문명의 기틀을 다졌다. 단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원이 바뀌게 된 것뿐이다.

 

이를 더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말하다'로 뜻이 전이된 경우다. 우리말에는 '가로다(말하다를 옛스럽게 이르는 말)'가 있고 '가르다'(제주도 방언으로 말하다를 의미) 등이 있다. 구름은 '구르, 굴'이 원 형태였을 것이다. 동그란 의미를 생각해 보면 된다. 

 

이 소리와 비슷한 '가르륵, 가르' 등의 소리가 갑골문자 이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여기서 핵심 소리는 '가르'다. 전부 소리나는 형태를 뜻하는 말이다. '가르륵'은 방언으로 새, 짐승들이 소리내는 것을 말한다. '가르릉'은 고량이 소리다. '가르치다'는 말로 교육함을 의미한다. '가르다'는 방언으로 '말하다'를 뜻한다.

 

이런 배경하에 그 당시 사람들은 '구르(름)와 가르'가 소리가 같아 구분하여 글자를 새로 만든 것이 雲이다. 연암 박지연이 지은 열하일기에 보면 "청나라 사람들은 고전을 배울 때 먼저 고전 소리를 먼저 외운다음 강의를 듣는다"라고 나온다. 우리는 뜻과 소리를 같이 한 번에 배우면서 소리와 뜻을 따로 배울 필요가 없는데 청나라 사람들은 따로 배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公子云으로 이어지는 구절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공자가 말하기를"로 학습하지만, 중국어로는 "공자가 말하기를"과 "공자가 구름을~"로 해석할 수 있다. 조사가 없기 때문에 뒤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로 云을 해석하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연암 박지원은 실학자이면서, 이런 중국어를 세계에서 제일 가는 언어라 말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나라 사람들은 실생활에 한자 소리를 쓰면서 살았고, 연암 박지원이 볼 때 뜻과 소리를 같이 배우는 것이 소리를 배우고 따로 뜻을 강의 받는 것보다 더 번거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 청나라가 선진국이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났을 수도 있다.

 

'구르와 가르'로 云이 왜 두 가지 뜻을 가지는지 설명했다. 여기서부터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다. 두 소리는 전혀 같지 않고  견강부회다. 이런 의견이 있다면 받아 들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되는 것은 우리말은 소리로 이뤄져 있다. 그 만큼 진폭이 커도 알아 듣는다. 이는 수천 년 전에도 같았다.   참고로 雲의 고대 발음은 'gun'이었다. 소리부수가 '구르'인데, '군(gun)'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도 한국어를 몰라서 다르게 표기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소리내는 '운'은 'g'가 탈락한 다음의 소리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르'로 시작되는 핵심 소리를 쓰고 있다. 云의 고대 소리를 살리고 있음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말 소리는 거의 1만 년 전부터 동북아시아를 넘어 시베리아 초월을 가로질러 공용어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 연구소가 발표한 트랜스유라시아어의 기원이다. 9천 년 전에 현 요하 지역의 사람들이 말하던 언어가 트랜스유라시어의 뿌리라고 발표했다. 이 지역은 우리 선조들의 오래된 터전이었다.  

트랜스유라시아어 기원 추정지
한겨례 신문 인터넷판에서 발췌

막스플랑크 인류사 연구소는 이미 한국어가 그 뿌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요하에서 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한민족의 선조들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云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는데, 왜 그 언어를 쓰고 있는 우리의 학자들은 연구하지 않는 것인가? 雲의 설명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다. 云이 구름에서 다른 뜻으로 전이되면서 생겨난 문자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에서는 云을 다시 구름으로 쓰고 있다. 雲이 쓰기가 복잡해서 간체자 형식으로 云이 구름을 뜻하는 것으로 정했다.

 

참고로 雲은 云이 나온지 한참(천년 이상) 지나서 나온 문자이며, 일부 학자들은 'gul'에서 비롯된 말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뜻은 'revolve'(둥글게 돈다)라 지칭한다. 영락없는 우리를 '구르다'의 '굴'인데, 한국어에 대한 언급은 없다. 

 

더 아쉬운 것은 공자왈, 맹자왈에 물들어 보낸 세월 속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잊었고, 민족의 영혼마저 잃어버렸다. 그리고 주객이 전도된 상황 속에 우리는 아직도 살고 있다. 마치 1968년에 나왔던 영화 혹성탈출을 연상케 한다. 지구에서 출발한 우주선이 불시착한 곳이 3천 년 이상 지난 '지구'라는 것, 지구의 주인이 인류가 아니라 '유인원'들이라는 것 등이 한자의 기원이 뒤바뀐 현실을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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