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린맛의 시작
수백만 년 전 유인원 탈을 벗은 초기 인류는 나무에서 내려와 걷기 시작했다. 대지를 걷고 초원을 건너 산을 넘었다. 드디어 위험한 야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육식 동물이 먹다 버린 동물의 시체를 먹기 위해 가끔 땅으로 내려오던 유인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들판에 서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 사투를 벌어야 하는 야생의 전사가 되었다.
전사로서 지닌 무기는 직립보행을 통해 얻은 자유로운 손이 전부였다. 거대한 야생의 동물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무기였지만, 나름 손을 이용해 자연이 선사하는 여러 가지 식물을 자유롭게 섭취하고,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섭취하는 음식은 비렸다. 특히 작은 동물의 육질을 입으로 씹을 때 같이 터져 나오는 핏물은 비린맛의 시작이었고, 푸석푸석한 육질은 비린맛을 더욱 증폭시켰다. 사실 생존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비린맛은 현대로 비유하자면 달콤한 초콜릿과 다를 바 없었다.
초기 인류가 지상에 서식하는 작은 동물의 육질 맛에 적응해 갈 때, 그들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한다. '불'의 발견이었다. 대략적으로 140만 년 전이었다. '불'은 초기 인류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첫째로, 먹이를 익혀먹게 되었고, 이로 인해 소화기관이 축소되었다. 소화기관 축소는 뇌의 발달을 야기시켰다. 소화기관으로 가야 하는 에너지가 뇌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유일한 무기였던 '손'을 훨씬 능가하는 '불'이라는 무기가 생겼고 야생동물을 쫓을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인류보다 더 큰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네 번째로, 야간에 움직일 수 있었다.
2. 동굴에서 나와 강가로
뇌의 발달은 인류에게 또 다른 큰 선물을 주었는데, 아주 간단한 의사소통이 그 선물이었다. 여러 학자들이 추론하기로는 초기 인류가 처음 뱉은 소리는 현재 영어 알파벳으로 'm, b'에 가까운 소리였다고 한다. 엄마를 뜻하는 전 세계 언어에는 'm'이 들어가고, 'b'는 '유라시어, 아프리카' 등지에서 '불'과 관련된 소리로 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불태우다'는 'burn'이며, 아프리카 차드어로 'bal'은 '불태우다' 뜻이다. 차드는 참고로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다. 언어학자들이 연구결과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가능성은 농후하다.
작은 의사소통을 통해 초기 인류는 장소라는 위치 개념과 집합이라는 수의 개념을 알아내었다. 장소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집합은 '불'에 이은 또 다른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을 터득한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사냥을 하고 작은 무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구석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인류는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동굴을 선택했다. 해가 떠도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직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야생동물을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었기에 동굴은 최적의 장소였다.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 구석기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무리가 커졌다. 당연히 동굴의 공간도 부족하게 되었고, 분산 또는 이동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정주생활에서 다시 이동해야 하는 숙명에 놓인 채로 다시 최적의 장소를 찾기 시작한다. 최적의 장소는 강가였다. 바다는 파도와 해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았다. 이제는 무리가 커져 탁 트인 공간에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또한 '불'로 밤을 밝히고, 돌'을 다듬어 무기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더불어 효율적인 수면 체계(고대 인류는 저녁을 먹고 4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 1~2시간 움직였다가, 다시 잠을 잤다_정리하는 뇌, 대니엘 J 레비틴)'를 익힌다. 효율적인 수면체계는 야간에 방어와 사냥을 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었다.
강가에 정착한 이들은 육상 식물 동물과는 다른 맛의 음식을 접하게 된다. 물고기였다. 불이 있어 잡아 바로 불에 구워 먹었다. 육식 동물의 피맛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물고기도 비렸다. 불로 구워도 비린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기 인류부터 구석기시대를 거쳐 강가에 정착한 이들은 머릿속에 맛의 개념을 주입하게 된다.
육식동물의 피, 물고기 살에서 나오는 비린맛이 대표적인 맛의 개념이었다. 과연 '비리다'를 그들은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답은 우리말에서 찾을 수 있다. 비리다'의 어간은 '비리'다. 영어로 음역 하면 'biri, piri'가 된다. '비리'는 '비려'로 표현도 된다. 영어로는 'biryeo, piryeo'로 읽힌다. 우리말은 소리의 진폭을 변동시켜도 알아들을 수 있다. 수천 년 전에도 이와 같았다.
3. fresh는 우리말 '비리다'와 관련
비려서(biryeseo, piyeseo)는 브려서(bryeoseo, pryeoseo)로 들릴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기 인류에게도 같은 현상은 있었다. 간단한 의사소통에서 하나로 단정지은 소리가 통용되었을 리는 만무하다. 초기 인류의 언어는 소리로 이뤄진 의성어(onomatopoeia) 의태어(mimetic words)가 주였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비이성적 판단은 아니다. 당연히 소리의 진폭은 존재했다. 우리말 소리에서 의성어 '찰랑찰랑'을 보자. 강가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물결이 찰랑찰랑'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물결이 칠렁칠렁'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다.
이런 현상은 초기 인류가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시작된 원시적인 표현의 방법이다. 우리는 이런 원시적인 말을 아직도 아름답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15세기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에 기록된 문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영어의 뿌리인 '인도유럽어'다. 영어의 뿌리는 그리스어, 라틴어가 아니라 그 이전 러사아, 우크라이나 남부 초원지대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다. 이게 인도유럽어다.
인도유럽어에서는 'preysk'가 '신선하다'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가 세월이 지나 'fresh'가 되었다. 앞에서도 설명을 하였지만 초기 인류에게 죽어 있는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동물(신선한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는 '비린맛'을 맛보아야 했다. 즉, '신선하다'는 '비리다'와 연관된다.
언어 학자들이 'preysk'를 밝히면서 참조한 언어가 하기와 같다.
1. 고대 영어: fersc, 뜻 fresh
2. 게르만 조어: friskaz, 뜻 unsalted, fresh
3. 고대 교회 슬라브어: presinu, 뜻, fresh
4. 리투아니아어: preskas, 뜻, sweet
[etymonline 참조]
리투아니아어는 가장 인도유럽어를 보존한 언어로 여겨진다. '비린 맛'이 '달콤한 맛'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점점 인도유럽어와 우리말 소리가 가깝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는 'b' 소리와 'p'소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도 원시적인 모습이다. 인도유럽어 같은 경우 게르만 조어, 라틴어로 오면서 b> p> f로 소리가 바뀌지만, 우리말 소리는 그냥 원시적으로 뭉뚱 구려 있다.
인도유럽어 'preysk'와 우리말 '비(브)려서(pryeoseo)'는 같아야 한다. 이유는 '빗살무늬토기'에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강가에 거주할 때 그릇으로 쓰인 도구다. 세계에서 최초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지역은 우리 선조들이 살던 지역이었다. 빗살무늬 토기는 시베리아를 거쳐 영어의 발상지인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초원지대에까지 미친다. 그리고 유럽 및 북유럽에까지 이어져 있다. 동쪽에서 시작한 그 문명의 부산물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우리 말소리를 전파했다.
신기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살던 동북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 중국에는 빗살무늬 토기가 없다. 기원전 1만 2천 년 전에는 지금의 서해, 발해는 육지였다. 기후 생태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환경 생명 저술가인 이진아 작가가 2017년 시사저널에 기고한 글을 보면, 빗살무늬토기의 이동 경로를 이야기했는데, 기원전 1만 1천 년 전에 한반도에서 출현한 빗살무늬토기가 기원전 4천 년 전에 바이칼호수 및 러시아, 우크라이나 남부 초원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진아 작가는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초원 지대는 영어의 발상지다.
누가 빗살무늬토기를 전파했는지가 관건이다. 한반도에서 출발한 것이 그 단초이고, 여지없이 우리 선조들이다. 자연스럽게 빗살무늬토기와 한국어가 전파된 것이다. 증거는 인도유럽어다.
동시에 영어 단어 'fresh'의 뿌리어인 인도유럽어 'preysk'는 우리말 '비리다'의 어간 '비리'의 파생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