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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할 선(善)은 漢字가 아니라 韓字다

by 뿌리를찾아서 2023.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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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善의 기원에 대하여

술에 거나하게 취하다.”라는 표현은 대한민국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사용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은 술을 많이 먹어 기분 좋게 취했다라는 것을 뜻한다.  거나 많다, 좋다라는 뜻이다. '거나'는 어간이기도 하다. ‘거나하다를 줄여서 건하다로도 쓴다. 그래서 거나, 은 많다가 된다. 사전에도 아주 넉넉하다로 나온다. 그런데 거나, 이 착할 선이라는 한자가 최초로 만들어질 때의 소리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善의 고대 문자는 밑에 모양이었다. 

善의 갑골문자
善의 갑골문자 모양(양을 묘사)

 

가운데는 양을 뜻하는 것이고, 아래 두 개는 언을 뜻한다. 이 모양이 새겨진 시기는 중국의 고대 국가 중에 하나인 주나라 시대다. 기원전 1046년에 건국한 주나라는 은나라(나라)를 그 해에 멸망시켰다. 

 

한자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갑골문자를 만든 나라는 殷나라이며  周나라는 殷의 문화와 언어를 이어받았다. 한편 이 모양은 周가 아니라 殷나라 시대에 이미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많다. 殷나라는 원래 夏나라와 함께 전설 속의 나라로 여겨졌으나, 갑골문자가 19세기 발견되면서 殷나라는 전설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실제 존재했던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또한 殷나라가 중국인들의 선조인 화하華夏족이 건국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유는 중국 및 일본의 많은 학자들, 심지어는 중국 학자들도 殷은 동이東夷족이 세운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東夷족은 우리 선조들을 의미한다. 오랑캐 夷로 배워온 우리들에게 중국의 역사인 殷이 우리 선조들의 역사라고 말하는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시각으로 이 글을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夷를 오랑캐로 가르치는 나라도 한국밖에 없다. 그리고 그나마 긍정적인 뜻으로 큰 활을 잘 쏘는 사람 정도로 기억한다.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夷의 뜻은 평평하다, 평온하다가 먼저다. 네이버 중국어 사전을 찾아보아도 먼저 나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 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가 저술한 『한자 기원과 그 배경』에서 殷은 東夷족의 나라이며, 周나라가 殷을 멸망시켰어도, 그 문화와 언어를 따랐다라고 쓰여 있다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인이 쓴 책임을 머릿속에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중국 학자 주학연이 쓴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에서 중국의 고대 삼국인 하은주夏殷周에서 夏는 몽골족이 건국하였고, 殷周는 여진족이 건국하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 몽골족, 여진족은 현재 중국 내부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중국이 기원이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도 이미 갑골문자가 현재 중국어로는 해석이 안되기에 한국은 인정하지 못하고 몽골족, 여진족을 끌어들여 비교언어학 관점에서 잭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여진족, 몽골족의 뿌리는 중국이 아니다. 

 

한편 주학연의 책에는 殷나라 사람들은 멸망 후 동방 군자의 나라로 돌아갔다.”라고 쓰여 있다. 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기자箕子. 기자는 고조선에 가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은나라의 유민으로 고조선에 몸을 의탁한 것이었다. 漢나라 시대에 궁형을 받고 감옥에서 사기史記를 저술한 사마천은 나라 잃은 유민에 불과한 기자를, “주나라가 조선의 왕으로 책봉했다는 거짓된 사실을 정설로 둔갑시켰다. 그 둔갑된 정설은 수천 년이 지난 현재에도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더군다나 사마천이 적은 확실치 않은 내용을 고려 시대 때 유학에 몰입된 신진사대부와 조선시대의 유생들은 하늘에서 내려 준 축복이라 여겼다. 기자箕子가 미개한 東夷족을 개화시켜 준 장본인이라 생각한 것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대로 유학을 만든 공자는 東夷는 군자의 나라라고 말했다. 동방 군자의 나라는 동이東夷를 말하며, 그 시대에 있던 고조선古朝鮮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에는 東夷를 고구려, 부여, 읍루, 동옥저, , 마한, 진한, 변한 등으로 거론하면서 왜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일반인들 중에 倭는 지금의 일본이 아니라 중국의 동남부 및 대만일 가능성이 많다.”라고 제시한다. 그들은 현재 한국의 주류 학자들보다 분석한 자료 및 그 해석에 상당한 깊이가 있어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2.  동이족은 우리 선조 

중요한 것은 은주殷周시대의 東夷는 우리 선조들을 말한다는 점이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 갑골문자 분석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善의 갑골문자를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양이 말을 하는 것이다. 한 마디가 아니고 두 마디를 하는 모양이다. 좀 더 확장하면 양이 말을 많이 하는 뜻이다. 이 모양을 해석한 학자들은 양이 온순하고 아름답고 착하기 때문에 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善에는 많다의 뜻이 있다. 

 

周나라 사람으로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1장 마지막 문구 夫唯道라야 善貸且成이니라라는 내용을 보면 善이 많다의 뜻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무릇() 오직() ()이어야 잘() 베풀고(), () 이룰() 수 있다.”라는 뜻인데, ‘이라는 뜻풀이보다는많이 베푼다가 더 어울린다. 도덕경이 너무 해석하기 어려워,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周나라 시대를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있는 풀이다. 그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은 풍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잘 베푼다는 뜻도 결국은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맥락에 연결되어 있다.殷周는 청동기 시대로 이미 들어선 상태였다. 더불어 왕이 존재하는 계급사회를 기반으로 운영되었고, 개인의 재산도 구분되었다. 각 개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그 시대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산물이기도 했다. 

 

노자가 바라본 도는 사실 공자의 인과 대척점에 서 있는데,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도라는 것이었다. 반면 공자는 인,  등을 강조하면서 사람이란 존재는 인위적인 깨달음이 필요하며, 가르쳐야 되는 대상으로 보았다. 공자의 善은 노자의 善과는 선천적으로 다르다. 필자가 보기에는 공자의 善은 잘해야 보상받는다는 개념에 맞춰져 있고, 노자의 善은 많다, 베풀다와 상통한다. 그 시대에는 백성들에게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라는 인위적 가르침보다는 노자의 善처럼 백성들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많이 베풀어 주는 것을 선호했을 것이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에게는 善은 많다로 먼저 각인되었다. 순차적으로 많음은 나누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었다. 그다음 좋음으로 연결되고최종적으로 착함에 도달한다. 그럼 왜 의 뜻이 많다인지 알아보자. 고대 소리는 ‘ɡenʔ, ɡjenʔ’ 두 개로 풀이되었다. 앞에 것은 미국학자 벡스터, 프랑스학자 사가르의 의견이며, 뒤에 것은 중국 학자 정창의 의견이다. 두 개를 한국어로 음역 하면, 거나’로 통일된다. 즉, '많다'를 뜻한다. 지금부터 3천6백천6백 년 전의 소리다. 오히려 벡스터와 사가르는 중화 문화권도 아니고 한자 문화권에서 살지 않아서, 오히려 객관적인 연구를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중국 학자 정창도 거의 같은 소리로 밝혔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연구 결과다. 

 

참고로 사가르의 본명은 로랑 사가르로 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977년에 프랑스 파리 7 대학에서 중국의 방언 중의 하나인 하카어(客家)어 연구를 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그 이후 베이징언어대학, 난징대학에서 유학했고, 1990년에는 중국 남부 방언 연구로 엑스-마르세유 제1 대학 국가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벡스터의 본명은 윌리암 벡스터이며, 1949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1977년 언어학으로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벡스터와 사가르는 무려 5천 개의 고대 한자음을 밝혀 낸 후 온라인에 배포하였다. 정창은 1933년 중국에서 태어나, 60~70년대 중국 방언 수집 활동을 시작으로 고대 중국어 음성 시스템을 연구하였다. 1980년에는 중국 사회 과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하였었다.

 

https://en.wiktionary.org/wiki/Wiktionary:Main_Page에서 그들의 연구결과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세 사람의 연구 결과가 말하는 것은 36백 년 전의 善의 소리 및 뜻은 현재 한국어와 같음을 시사한다. 물론 그들은 한국어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히 뜻도 같으며, ‘거나하다의 어근 거나 많다를 의미한다. 많이 베풀 수 있는 것이 그 당시 善이었다. 사람의 뇌 구조는 지금이나 36백 년 전이나 같다. 뇌과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풀 잭이 저술한 『욕망의 뇌과학』을 보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기부를 할 때,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 후 각성효과를 일으키는 호르몬 코르티솔이 증가되었고, 동시에 다른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기부 대상자와의 공감능력 및 행복감이 증가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결국은 준다는 것은 감성과 이성이 결정을 하는데, 그 보상이 행복감이라는 것이다. 다시 고대로 시간을 돌려 생각해 볼 때, 그 당시에도 많음을 나눠주는 행위는 사람에게 있어서 행복, 즐거움을 주는 기폭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착함이라는 뜻을 선사하였다.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善은 많은 것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면 많이 가진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사정을 공감해야 했다. 그리고 왜 베풀어야 되는지 각성을 하여야 했다. 그것을 강조한 것이 노자의 도. 道를 통해 뇌 속의 호르몬 도파민, 옥시토신이 증가되기를 바란 것이다. 사실 道라는 한자도 우리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부문은 후속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만큼 깊이가 있는 문자이며 소리라 그렇다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점은 36백 년 전 善의 뿌리 소리는 우리말이었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거나라는 단어를 우리는 기억해야 된다. ‘거나는 갑골문자가 생겨나기 이전에도 있었다. 문자와 소리를 동시에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래된 소리다. ‘거나의 소리가 으로 변한 현상은 많은 언어에서 나타난다. 첫소리 g음이 s가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창조하였고, 우리는 동시에 변화된 음도 쓰고 있다. 

 

혹자는 갑골문자 소리를 연구한 서양 및 중국의 학자들의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연구한 이들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인 '설문해자' 및 기타 여러 서적, 현재 중국의 방언 등을 연구해서 발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며, 중국 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이기에 굳이 의심의 눈초리를 둘 필요가 없다. 설문해자는 서기 100년 경에 漢나라 허신이라는 사람이 저술한 사전이다. 그는 이 글자의 소리를 과 衍()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소리와 에서 ‘ㅇ’소리를 제외한 소리를 결합할 때 나는 소리를 말한다. 그 당시 발음은 그래서 이었고, 현재 중국어로는 ‘shàn’이다. ‘, ,  등은 그 소리의 핵이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 중국어 소리와 현재 중국어 소리가 완전 다른 것은 수많은 이민족異民族들이 중국을 지배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의 갑골문자 소리와 다르다고 항변하며, 한자는 중국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사이비似而非언어학의 발로發露라 매도한다. 특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학자 및 일반인들도 대부분 한자가 우리 조상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설문해자에서 보듯이 2천 년 전의 소리와 현재의 소리가 같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한자의 소리에서 받침이 빠져 단순화된 것도 사실이다. 

 

3. 갑골문자의 소리 변화는 이 민족의 지배와 상관이 없음

보다 정확한 기술을 한다면 소리의 보존과 변화가 동시에 있었다는 것이다. 갑골문자 소리가 현재 중국어 소리와 다른 것을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 탓으로 돌리는 것이 거꾸로 사이비似而非가 되는 것이다. 善의 기원 후 100년 전 소리는 지금과 같다. 갑골문자는 설문해자가 나오기 전1천7백 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 사이에는 은,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  등의 나라만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전부 漢족들이 세운 나라다. 만약 이민족의 침입과 지배로 인해 고대 중국어 소리가 바뀌었다는 논리가 맞으려면, 善의 갑골문자가 나온 殷나라부터 허신이 살던 漢나라사이에 있던 수많은 나라들은 이민족이라는 결론이 있어야 하지만,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어 소리와 같은 善()의 갑골문자 소리 거나 으로 변하기까지 1천7백 년이 걸렸다. 이민족의 지배가 아니라면, 답은 두 개다. 하나는 갑골문자 소리를 연구한 서양, 대만, 중국 학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 다른 하나는 갑골문자가 태동하던 시기에 이미 공용어로 자리 잡은 한국어를 사용하여 문자에 소리를 더했고, 한국어를 사용하던 주체가 점점 사라지면서, 대륙 변방에 있던 중국인 조상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언어체계에 맞게 소리와 문법을 변화시킨 것이다.     

 

필자는 두 번째의 답이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갑골문의 대가로 알려진 양동숙 교수의 『甲骨文字 그 깊이와 아름다움』에서 그녀는 점 복의 갑골문자 소리를 밝혔는데, 앞에 거론한 벡스터와 사가르의 연구 결과와 같다. 참고로 양동숙 교수는 갑골문자가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에, 필자의 의견과는 다르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바탕에서 누가 갑골문자를 만들었는지는 자명하다. 그리고 한자 善의 뿌리 문자와 소리가 어느 언어를 가리키고 있는지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바로 우리가 쓰는 한국어다. 동시에 중국 및 일본 학자들이 이야기 한 殷나라가 왜 東夷족이 만든 나라인지 깨달을 수 있다. 고조선과 殷나라는 제후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도 추측해 볼 수 있다. “殷이 멸망한 후 동방 군자의 나라로 돌아갔다는 중국 학자 주학연의 말처럼 그 군자의 나라는 고조선이기 때문이다. 

 

4. 고조선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음

아쉬운 것은 고조선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 초에 관련 서적을 나라에서 수거하여 없앴고, 일제 때도 많이 사라졌다. 더 아쉬운 것은 한자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지내온 세월도 2천 년이 넘는다는 현실이다. 더 뼈아픈 것은 고고학을 전공한 한 교수가 방송에 나와 고조선 청동기 문화를 다루면서 여러 의견이 공존하고 있는 청동기 전래에 대해 서슴없이 시베리아에서 전파되어 온 것이라 말하다는 점이다. 패널 중에 한 명이 K Pop 같은, K-청동기라 무심코 외쳤지만, 사용 연대가 시베리아 것이 앞선다고 하면서 패널의 의견을 덮었다. 정작 그 교수의 의견은 사실이 아니다. 단국대학교 윤내현 교수가 지은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에서는 영암, 양평의 청동기 유적은 기원전 년으로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유적인 2천2백 년 것 보다 앞선다. 그리고 중국의 청동기 유물의 연대인 2천2~3백 년 전보다 앞선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실로 어이없는 것은 1972년 양평군 양수리에 청동기유물을 발굴하고 탄소 연대측정 시 2천 년이 훨씬 넘는 결과가 나왔었다. 안타까운 것은 연대가  너무 높게 나왔다고 그 당시 한국의 고고학계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과학의 결과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자랑스럽게 발표해서 세계에 알려야 할 사실을 덮은 것이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제라도 모든 사람들이 갑골문자 연구를 시작하면 왜곡된 세월과 역사를 극복할 수 있다. 갑골문자 소리에 사라진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 숨을 더 크게 쉬게 해 달라고 우리의 선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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