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는 써 ‘이’로 읽으며, 부수는 사람 人이다. 요즘은 한자사전을 찾는 일이 없고 부수가 없어도 네이버나 다음 사전을 이용하면 손쉽게 한자 및 부수를 찾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이 글자는 사람 인人과 전혀 관계가 없다. 2천 년 전 허신이 지은 說文解字(설문해자)를 보면 현대 한자사전과 다르게, 사巳가 부수로 나오며, 이以자 대신 以의 고자古字 이㠯가 나온다. 설문해자에는 뜻은 용야(用也)로 나오며, 소리는 양지절羊止切로 설명되어 있다.
뜻은 ‘쓰다(用)’이고, 소리는 양羊의 첫소리 모음을 취하고, 지止의 중성 모음, 종성 자음을 취하라는 것인데, 止는 종성이 없음으로 ‘이’가 된다. 설문해자는 이렇게 한자를 가지고 반절음으로 다른 한자의 발음을 표현한다. 그 표현 방식이 현재 중국어보다는 한국어에 더 어울리는 표현법인데, 무려 2천 년 전에 이미 사용했다는 것도 연구의 대상이다.
그러면 갑골문자의 모양은 무엇일까? 허신은 뜻은 ‘쓰다’, 소리는 ‘이’라고 했는데, 과연 갑골문자와 같을까? 그리고 현재 중국어로 以를 어원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뜻과 소리를 양보한다 하더라도 어원적 설명이 되지 않는다면, 갑골문자는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以의 갑골문자는 두 개가 있는데, 청동기에 새겨진 것과 점을 칠 때 사용한 거북이 배껍질에 새겨진 문양이 있다. 첫 번째는 이런 모양이며,
두 번째는 이런 모양이다.
wiktionary에서도 각각 구분 지어 설명한다. 첫 번째는 ‘쟁기’로 설명하고, 두 번째 것은 사람이 무엇을 옮기는 것이다. 설문해자에 적힌 것을 근거로 以의 옛 글자(秦나라 소전체)는 㠯다. 그러면 㠯도 같은 갑골문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설문해자를 보면 以는 㠯보다 늦게 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설문해자는 이㠯(以)의 뜻이 ‘쓰다(用)’라고 하였다. 이 뜻은 현대 중국어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 한자사전에도 없다. 대신에 ‘~로, ~까닭에, ~함으로써, ~을 주다, ~따라’ 등이 뜻의 전부다. ‘쓰다’라는 뜻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부문을 볼 때 한국어도 以의 태생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 ‘쓰다, 쟁기, ~로’까지 전부 우리말 소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절대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것이 아니다.
㠯의 소리를 따르는 글자가 耜(보습 사, 쟁기날, 갈다)이다. 소리 부수가 㠯이기 때문이다. 즉 고대에는 㠯(이)와 耜(사)는 소리가 같았을 것이며, 동시에 고대에는 㠯의 뜻도 耜의 뜻과 같아야 한다.
㠯소리의 갑골문자 소리는 ‘sə-ləʔ’이며 우리말 소리로 음역하면, ‘서레, 서러, 서라’ 등의 소리로 읽을 수 있으며 '사'와 비슷하다. 이 소리들의 핵심은 ‘서레’이며, 㠯의 갑골문자 소리다. ʔ음은 옛날 음을 밝히면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소리 변화의 폭을 준 것이다. 소리는 ‘아’와 비슷하다.
㠯의 갑골문자 소리가 ‘서레’라는 것을 머릿속에 넣고 농기구부터 따져 보자. 우리말에 쟁기와 비슷한 농기구가 있다. 쟁기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아는 단어는 아니지만, 쓰레받기에서 ‘받기’만 빼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농기구 이름 ‘쓰레’가 나온다.
뜻은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는데 쓰는 농기구”다. 뜻하는 바가 정확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3천6백 년 전의 상황을 고려하면, 같다고 할 수 있다. 농경에서 밭을 가는 것만큼 고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혼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골문자 보양도 끝이 둥글어서 밭을 고르는 것에 더 적합하다.
‘쓰레’는 방언으로 ‘써레’다. 즉 써레가 쓰레고, 쓰레가 써레다. 써레는 갑골문자 ‘서레’와 동계 소리다. 다시 말해 갑골문자에서 농기구 이름으로 전하는 뜻과 소리가 현재 우리말 소리와 같다. 왜 갑골문자 소리와 현재 우리가 쓰는 농기구 이름이 같은 것인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
다음 짚어 볼 것은 설문해자에 나온 용야用也의 뜻 ‘쓰다’다. 우리말 대화체를 보자. “이것 쓸 거예요?”, “그걸 써라” 여기서 둘 다 ‘쓰다’를 뜻한다. ‘쓰레’는 ‘쓸’로 축약되고, ‘써레’는 ‘써라’로 연결된다. ‘쓰, 써’를 활용한 것뿐이다.
갑골문자가 태동하기 이전에 이미 농기구를 뜻하는 ‘서레’라는 소리와 ‘쓰다’를 바탕으로 하는 활용형 소리인 ‘쓰(스)레, 써(서)레’ 등이 쓰이고 있었다. 문자가 탄생할 때 소리가 동시에 붙는 경우는 드물다. 이미 있던 소리를 문자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갑골문자 출현 당시 농기구를 뜻하는 소리 ‘써(서)레’와 ‘쓰다’의 활용형 소리가 공존하고 있었다. 㠯에 ‘서(써)레’의 소리를 붙였고, 후대에 소리가 같아 㠯가 ‘쓰다’의 뜻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1천7백 년이 지난 시점인 기원 후 100여 년 무렵 허신이 설문해자를 통해 用也(쓰다)로 이를 증명하였다. 또한 이를 또 증명하는 것이 우리말 소리다. 우리말 외에는 㠯자 뜻의 다양성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써레’는 우리 옛말 ‘설다’의 어근 ‘설’ 또는 옛말 ‘슬다’의 어근 ‘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 15세기 표현에 있다. ‘설어’라 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서러’로 쓰여 있다. ‘설다’의 뜻은 ‘걷다, 치우다, 정리하다’ 등이다. 그리고 ‘슬다’도 옛말로 ‘스러지게’의 의미였다. 쟁기로 간 땅은 흙이 서있거나, 흩어져 있다. 이를 다듬는 것은 흙을 쓰러트려 땅을 치우면서 정리하는 것이다. 즉 ‘설, 슬’의 어근에 조사가 붙은 활용형 소리(서러, 스러)가 수천 년 전에도 있었고 거기서 약간의 변형된 소리가 갑골문자에 쓰인 것이다.
우리말로는 이렇게 동사, 명사의 기원을 가지고 갑골문자 뜻, 소리를 어원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어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설’ 소리는 뜻이 다양하다. 다양함은 어원의 자격이 된다. 식물, 동물의 기원을 따질 때 변형 종이 많아야 원산지 취급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언어에서 같은 소리가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해야 말소리의 원형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설’은 아주 오래된 소리다.
그러면 ~로라는 뜻은 언제 나온 것일까? 이 것을 알기 위해서는 以의 갑골문자 소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소리는 ‘ləʔ’다. 갑골문자의 대가인 프랑스의 사가르와 미국의 벡스터가 밝혔다. 현대 소리인 ‘이’가 아닌, 우리말 소리 ‘로’와 동계소리다. 써 以의 1천7백 년 전 뜻은 '쓰다'였고, 3천6백 년 전 뜻은 조사 '로'였다.
다시 말해 우리말 접사다. ‘~로는 ~써 및 ~로써’ 등과 같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 ‘~로’를 치면 바로 以가 나온다. 신기한 것은 ‘~로, ~써, ~로써’ 세 개가 뜻이 같다. 즉 ‘~로 와 ~써’를 결합한 ~로써도 뜻이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금이후(今以後)를 해석할 때 今以는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된다. “지금(今)으로(以)부터(從)이후(後)”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써 이以가 아니다. 그냥 갑골문자 소리, 우리말 소리를 대입하면 해석이 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갑골문자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우리말 소리는 쓰였다. 동북아시아, 시베리아에서 사용한 공용어였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소리를 문자가 만들어지면서 갔다가 붙인 것이다.
농기구와 ‘쓰다’를 먼저 뜻했던 㠯의 갑골문자부터 후대의 以자까지 전부 우리말 소리를 붙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두 문자의 갑골문자는 서로 같다. 뿌리가 하나에서 의사소통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문장과 문장, 뜻과 뜻을 연결할 때 필요한 문자가 필요했고, 以의 생성과 동시에 우리말 ‘~로, ~써’등을 붙인 것이다. 즉 갑골문자가 나오던 시절에는 '조사, 접속부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순서대로 정리하면 농기구를 표현하는 문자가 출현했고 그 문자는 㠯였다. 이 문자에 붙인 소리는 ‘서(써)레’였으며, 동음이의어인 ‘쓰다’의 활용형 ‘써레, 쓰레’ 등이 있었다. 그래서 후대에 ‘쓰다’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㠯는 고어형으로 남았으며, 농기구의 뜻은 耜가 대신했다.
또한 조사를 표 헌 하는 글자가 필요했고 이런 이유로 생겨난 문자가 以며, 소리는 ‘로’였다. 이 글자가 태어나던 시기에 이미 ‘써’도 접사로 쓰이고 있어서 以의 뜻에 ‘~로, ~써’ 등이 붙게 된 것이다.
한편 네이버 한자사전에 用의 뜻의 하나로 ‘~써(以)’가 있다. ‘쓰다’를 뜻하는 글자인 用에 같은 소리 다른 뜻인 ‘~써(以)’가 있다. 왜 있는 것일까? 用이 원래 소리가 '쓰, 써'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천 년 전 갑골문자가 만들어질 때 이미 우리말이 사용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문자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소리가 붙고 그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이미 있어 다른 뜻이 포함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밝힐 수 있는 언어는 전 세계에 한국어밖에 없다. 그 시대에 이미 공용어로 쓰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중국어에서 ‘~써(以)’라는 소리가 ‘쓰다(用)’의 소리로 나는지는 확인해 보면, 당연히 없다.
도대체 한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제는 중국인들이 밝힐 때가 되었다. 차용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중국어에서 ‘~로, ~써’ 등의 조사, 접속부사도 차용했는지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중국어에는 조사, 접속부사가 없다.
以와 用의 연결고리는 갑골문자 소리다. 用도 원래는 ‘나무로 만든 물통’을 뜻했고 소리는 ‘로옹’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로’와 혼용되었고 다른 소리 같은 뜻인 ‘~써’라는 의미가 붙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써’라는 의미가 더 강해져 쓸 用이 된 것이며, 이를 漢나라의 허신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해 입증했다. 전부 우리말 소리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것이 한자의 어원이다.
일부에서는 “나무통의 뜻이 후대에 ‘쓰다’의 뜻이 되었다”로 설명하는데,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나무통이 왜 쓰다가 되는가? 나무통을 써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럼 그 시대에 나무통만 썼고 다른 물품들은 쓰지 않았단 말인가? 도대체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이 어불성설을 사실로 믿고 있다.
이러한 어불성설은 잘 믿는데, 비참하게 우리는 우리 역사를 믿지 않는다. 심지어 부정하며, 있는 것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마치 집단 착각에 걸려 있는 듯하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를 종교적 신념처럼 떠 받들고 있다. 마치 이단 종교의 신념과도 같고,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이단 종교는 고려 신진사대부가 득세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명맥은 지금도 유지된다. 특히 조선의 노론세력(이완용), 일제 침략기에 나라 및 역사를 팔고 득세한 특권 계층들은 여전히 그 종교의 집단 교주들이다. 이를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갑골문자 소리 연구다.
우리에게는 역사책이 없어도 너무 없다. 몇 권 더 있지만, 이단 종교에서 인정하는 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전부다. 그것도 다 인정해주지 않는다. 초기 기록은 무시다. 다 이유가 있다. 그 종교의 교주들 위에 군림하는 중화사상과 일제 식민 사상을 주입시킨 최상위 교주들이 중국과 일본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문은 이덕일 교수의 유튜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 침략기에 수십 만 권의 역사서가 사라졌거나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5천 년 아니 그 이상의 역사 유물들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역사책이 없다. 그래서 유일한 방법이 갑골문자 연구다. 뒤집어진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