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인 헤르만 헤세는 그의 저서 《밤의 사색》에서 동양적 예술의 배경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다고 하였다. '느림'이 예술로 승화되어 서양 독자들이 동양의 이야기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가 바라본 동양은 시간이 천천히 뭉뚱그려 흘러가는 곳이라 여유가 존재하고, 서양은 시간을 쪼개서 상업화시켜 여유의 미학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느림의 문학은 동양의 이야기보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머리 기름 발라가며 바느질하는 모습, 단아한 한복을 입고 자수를 놓는 모습, 어머니가 뜯어진 이불을 바느질로 깁는 모습, 군대에 입대해서 명찰을 바느질로 다는 모습 등등 이 모든 바늘과 연관된 우리의 일상들이 바로 느림의 미학이다.
바느질에는 '실'이 필요하다. 인류가 최초로 바느질을 한 기록은 없지만, 인류학자들이 말하기를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도태시킬 수 있던 이유가 '바느질'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모사피엔스는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동물의 뼈를 바늘로, 식물 또는 동물의 털을 실로 이용하여 옷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일리가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홀로 생존한 지 수 만 년 이 지난 뒤에 동양에서는 '실'의 실체를 담은 글자가 탄생한다. 그 글자는 하기의 모양이다.
실 絲(사)의 씨앗 글자이다. '실'을 상기와 같이 표현한 이유는 엮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이다. 3천6백 년 전 또는 그 이전 꼬인 '실'을 표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다 만든 역작이 위의 글자다.
위의 역작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당연히 중국인들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집단착각에 걸린 환영에 가깝다. 환영을 깨트리는 소리를 발견한 사람은 중국 사람 '정창'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학자이자 갑골문자 소리의 대가였던 그가 밝힌 絲의 갑골문자 소리는 'slw'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스르, 시르' 정도로 읽을 수 있다. 한 눈에도 알 수 있듯이 실 絲(사)는 원래 소리가 '실'이었다. '스르,시르, 실' 왜 같냐고? 의문이 든다면 다음 설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떡이나 쌀을 찌는 질 것을 '시루'라고 한다. 시루의 옛 말은 '시르, 실'이었다. 즉 소리측면에서 '시루, 시르, 실'이 하나로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실'의 소리가 수천 년 전에 '스르, 시르'였다고 하는 것은 '실'의 소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바느질하면 한복 입은 고운 여성의 자태가 생각나듯이 실 絲(사)를 떠올림과 동시에 '실'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 글자가 한자라 우리말이 아니라는 착각은 "낫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와 같다.
실의 기원은 당연히 글자와 소리를 만든 사람들에 있다고 봐야한다. 그럼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선조들이며,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만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