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일을 '길쌈'이라 한다. 조선시대부터 길쌈은 보편화되어 있었고 ≪성종실록≫에 왕비가 양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친잠례"의식을 치렀다는 기록도 있다. 그만큼 비단 짜는 일, 즉 길쌈은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나라의 일이었다. 아직 창덕궁에 뽕나무가 남아 있듯이 그 옛날 길쌈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누에 치는 일은 그 역사가 길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시작된 농경의 한 부문이며, 한자의 시초인 '갑골문자'가 생겨나던 시기에 이미 누에 치는 일이 나라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많다.
한자로 '실'을 뜻하는 글자 '사'는 아래와 같다. 아래 글자를 두 개 붙여도 '실'을 뜻하는 糸(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의 글자는 糸와 다르게 다른 소리가 있는데 '멱'이다. 가는 실 '멱'이라고 읽는다. 이 '멱'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인류가 진화해 오면서 최초로 만든 실은 자연에서 얻은 재질로 만들었다. 누에를 치기 전에 동물의 털 또는 식물로 실을 만들었다.
누에를 치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양잠이 시작된 이후고 '실'이라는 개념도 같이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면 과연 '멱'은 왜 이 글자에 붙은 것일까?
누에치기는 보통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알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미 중국 측 역사서에 '고조선'때부터 양잠을 시작하였고 관련 유물도 만주 및 평양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은 기원전 27세기에 양잠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고, 우리나라는 그 보다 천여 년 앞선 6천 년 전부터 양잠을 시작하였다.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신석기 유적에 그릇 밑에 누에의 기본 먹이 뽕잎이 그려져 있고, 압록강 건너편 만주 유적에 누에 소조품이 나오기도 하는데 모두 6천 년 전 것이다.
또한 중국 누에와 우리나라 누에가 다르다. 중국 누에는 넉잠누에이고 우리 것은 석잠누에이다. 이렇게 기원을 따지는 것은 '멱'이라는 소리가 왜 같이 포함되어 있는지 파헤치기 위함이다.
누에를 치기 전 우리 선조들은 동식물에서 나오는 재료를 꼬아 '실'같이 사용하였다. 그 모습을 나타낸 그림이 아래와 같이 갑골문자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위 그림이 하기 '사'의 원형이며 가느다란 재질을 꼬아 놓은 상태를 뜻한다. 누에를 치기 전 동물의 털이나, 식물의 가느다란 줄기 또는 짚으로 엮은 모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갑골문자 소리는 중국 학자 '정창'이 밝혔는데 'meg'의 소리라 하였다.
우리말 소리 중에 '멱(myeog)이 있다. 비록 meg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동일계열 소리다.
우리말 '멱'은 누에를 치기 전 동식물의 재질로 엮은 상태를 말하는 단어다. 구체적인 뜻은 "짚은로 날을 촘촘히 결어서 만든 그릇의 하나"이다. 비록 뜻은 그릇으로 귀결되어 현재 쓰이고 있지만, '짚으로 엮은'이 핵심어이다.
"신석기시대에 먼저 토기로 그릇을 만들었고 그 이후에 동식물 재질로 그릇을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단어가 '멱'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는 누에를 치기 전 동식물 재질로 엮어 만든 결과물이 '멱'이 표현하고 싶은 뜻이다. 6천 년 전 누에를 치기전 이미 '멱'이란 소리가 '실'이라는 어원을 설명하고 있었다.
과연 중국어로 이런 소리 체계와 뜻으로 한자의 어원 및 소리를 해석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