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는 上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에서는 차에서 내릴 때 下를 쓴다. 발음은 xia라는 음이다. 성조는 표시하지 않았다. 갑골문자의 형태는 아래에서 보듯이 上과 반대되는 모습이다.
下는 아래를 뜻한다. 어떤 물체가 아래로 향하거나, 아래에 있는 의미이며, 어떤 서양 학자는 下의 고대음이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갑골문자도 위의 큰 휙은 기준을 의미하고 아래 작은 획은 아래로 향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은 태국, 캄보디아아어, 미얀마,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아, 네팔, 베트남, 현재 중국 남부에 위치한 국가들의 언어를 뜻한다. 중국인들의 조상은 분명 동남아시아에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간단한 예가 라오스어도 조사가 없다.
이미 서양 학자들은 중국어를 티벳어, 미얀마어, 캄보디아어 등으로 묶어서 같은 어족으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이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스트로아시아어족에서 ɡraːʔ는 descend, below, down 등의 의미다. 즉 ‘아래로 향하다, 아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학자 스타로스틴은 ‘ghra’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 당시 음을 다시 추적하면 gahra(가흐라)정도 될 것이라 보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사람들이 한자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자는 통상 중국인들이 만들었다고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한자를 만들면서 중국인들의 조상이 동남아시아에서 썼던 소리를 붙였다고는 볼 수 없다. 이유는 gahra는 가흐라 또는 가h라 등으로 음절이 2개 또는 3개가 된다. 단음절로만 이뤄져 있는 현재 중국어가 이렇게 음절 수가 많은 소리의 뿌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 가정이 맞는다면, 한자의 기원은 고대 동남아시아인들의 문화적 소산이라고 유네스코에 등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럴 마음이 없다.
한편, 고대 한자음의 대가인 벡스터와 사가르트는 下의 갑골문자 소리를 ɡˤraʔ로 밝혔다. 우리말 소리로 바꾸면 가라아, 가라오가 된다. 옛 소리는 모음 ㅏ 대신 아래아(ㆍ)를 써서 벡스터와 사가르트가 밝힌 소리에 더 가깝다. ʔ의 소리는 ‘아 또는 오’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가라’가 된다. 가라의 의미가 下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 전 세계에서 ‘가라’가 아래를 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언어는 어디에 있을까? 자연스럽게 평지에서 어떤 물체가 외부에 힘없이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현상은 상고시대나 지금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물에 물체를 놓았을 때는 자연스럽게 가라앉는다. 그래서 下는 물과 관련이 있다. 가라는 더 고대로 올라가면 ‘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밝힌 사람은 고인이 되신 서정범 국어학자다. 그는 '가라앉다'에서 '가라'는 물을 의미한다고 그의 저서 국어어원사전에서 밝힌 바 있다.
가라의 핵심을 제대로 쓰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한국 사람들이다. 가라의 의미는 아래를 향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말 소리는 거의 화석어 수준이라 해도 무방하다. 변하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해 주는 것이 오히려 중국인들의 조상이 만들었다는 한자의 갑골문자 소리다. 이런 기초적인 배경을 현재 중국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알 수가 없다.
구석기 시대 호모에렉투스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을 했을 것이고, 호모사피엔스는 더더욱 진보된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만 알 수 있지, 그 이상은 이론적 자료뿐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의사소통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문화가 먼저 형성되고 언어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만큼 언어의 시초는 원시적일 수밖에 없다. 원시적인 관점에서 우리말 가라앉다에서 가라는 우리 선조들이 자연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뱉은 소리이며, 후에 감정 등을 나타내는 순수한 모습의 의태어로 변형된 것이다. 왜냐면 “감정이 가라앉다”라는 뜻은 “화가 가라앉다”의 뜻이 된다. 치밀어 올라왔던 감정, 화가 밑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다. 가라는 가장 원시적인 자연의 현상에서 시작하여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런 표현은 영어에도 있다. ‘calm down, soothe down에서 보듯이 down이 있다. 이 표현 모두 ‘감정을 누그러트리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는 도구는 사실 사람들이 느끼는 표현을 담아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영어의 표현과 한국어의 표현에 있어 밑으로(down)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현재 중국어에서도 ‘감정을 가라앉히다,화를 누그러뜨리다’ 등의 표현에 down을 뜻하는 내릴 강降을 쓰며 ‘降气’ 로 표현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下의 갑골문자 소리 ‘가라’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를 가라앉히다, 화를 내리다 등으로 우리는 쓰지만 중국어에서는 강降, 소消, 침沈 등에 氣를 붙여 “감정, 화를 누그러뜨리다” 등을 표현한다. 이 중에 가장 가라앉다에 접근한 것은 가라앉을 沈인데, 갑골문자 소리는 ‘가라’가 아니다.
어느 쪽으로 분석을 시도해도 한국어가 갑골문자의 뿌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일부의 중국 학자들도 갑골문자는 東夷족이 만들었다고 인정한다. 즉 한국인들의 조상이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은나라 자체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그들도 수긍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주류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은나라 사람 箕子가 조선에 봉해져서 "그 은덕이 하늘과 같다"는 생각만 했던 고려 신진 사대부부터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은나라는 漢나라 이전의 같은 漢족이 만든 나라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역사가 뒤집어져도 한참 뒤집어져 있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수많은 역사책에 은나라는 동이족이 만든 국가라고 나와 있다.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갉아먹으려 하는 일본의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가 지은 『한자, 기원과 배경』 이라는 책에서 은나라는 동이족이 만든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하물며 중국 산동성에는 東夷 박물관이 있다. 중국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 작전을 바꿨다. 동이족을 인정하고 “중국의 조상인 華夏족에 동화되었다”라는 전략으로 동북공정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동화되지도 않았고 여전히 건재한 대한민국이 있기에 그들의 논리는 맞지 않다.
슬픈것은 여기에 한술 더 뜨는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자들이다. 그들은 중국의 주장대로 東夷는 동화되었거나, 은나라를 만든 동이족은 우리가 조상으로 생각하는 동이족이 아니라고 한다.
‘下’의 갑골문자 소리가 ‘가라’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기면서 그 삐뚤어진 중화주의 사관에서 벗어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