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독대에 한 번 올라 본 경험이 있다면, 구수한 장냄새와 장을 담은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 눈가에 아른할 것이다. '장독대'는 '장독'이 있는 곳인데, '장'은 한자로 쓰이고 '독'은 순수 우리말이며, 장(醬)과 '독'의 합성어가 장독이다.
'장독'은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시키는 기능을 하는 단어이자, 언어학적으로 왜 한국어를 썼던 고대인들이 한자를 만들었는지 알려주는 소중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장독'과 연관되는 한자가 豆(두)인데, 고대에 '두'는 제사의식에서 주로 식혜 등 국물이 있는 음식을 담는데 쓰였다. 漢나라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도 豆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두는 옛날에 고기를 먹을 때 쓰던 그릇이다.(豆, 古食肉器也)"라고 쓰여 있다. 이 두 가지 해설은 고려대 중문과를 나와 중국 남경대, 서울대학교에서 문학과 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성재 씨의 저서 "정역중국정사 조선·동이전 1"에 나온다.
실제적으로 豆와 연관되는 단어는 '독'이다. 豆는 사람들 대부분 '콩'으로 알고 있지만,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원래는 '그릇'을 의미했다. 후대에 '콩'을 뜻하는 문자로 쓰인 것뿐이지 실체는 '그릇'이었다.
豆의 갑골문자는 아래와 같다.
이 갑골문자 소리는 'dok(독)'이었으며, 그릇을 의미한다고 벡스터와 사가르트가 밝혔다. 3천6백 년 전, 아니 그 이전에 이미 '그릇'이라는 뜻소리 '독'을 쓰고 있었으며, 아직까지 우리가 이어 쓰고 있다.
유독 우리말에는 그릇과 관련된 단어가 많다. '독, 동, 그릇' 등등 여러 형태의 소리로 남아 있다. 이렇게 '그릇'의 소리가 여러 형태로 남아 있는 이유가 있다.
그릇은 인류가 만들어 낸 도구 중에 혁신제품에 속한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유목, 농경으로 넘어오면서 '그릇'의 중요성은 부각된다. 필요에 의해 더더욱 다양한 형태로 '그릇'은 만들어졌다.
특히 농경문화와 함께 한 곳에 정주하는 생활방식이 굳어지면서, '그릇'의 기능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그럼 농경문화가 세계 최초로 시작된 곳이 어딘가를 봐야 한다. 그동안 인도, 중국이라고 하던 학설이 1994년 충주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면서 뒤집어졌다.
1만 5천 년 또는 1만 7천 년 전의 재배볍씨가 나왔고, 세계 고고학회지에 자랑스럽게 세계 최초의 볍씨라고 등재되어 있다. 또한 소로리 근처, 조동리에서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70만 년 전에서 2만 년 전 사이의 역사를 담고 있다.
보통 문명 문화의 시작이라고 명명하는 시기는 후기 구석기시대(3만 년 전)이다. 소로리 조동리 유적은 문화를 잉태하기전 꾸준히 사람들의 유입과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단절이 아니라 지속성이 문화나 유적의 가치를 올리는데 소로리, 조동리는 세계 최초 볍씨가 나온 배경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豆의 형태가 그릇으로 원래 소리가 '독'이라는 것은 갑골문자가 나온 현재 대륙 허난성에 살았던 사람들과 한반도 중원에 살았던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한자를 만든 사람들과 최초로 벼 재배를 했던 사람들은 같은 계통의 사람들이었으며, 한국어를 쓰던 사람들이었다.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볍씨는 실체가 있음에도 부정하는 학자들도 많고 갑골문자가 한국인 조상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사이비 소리를 듣는 실정이기도 하다.
유명 작가인 '김진명'씨의 소설 '풍수전쟁'에도 바람 風의 갑골문자 소리가 '바람'이었다는 사실을 적시해도 중화사상과 식민지 사상에 물든 주류학자들은 '국뽕, 사이비, 유사'로 매도한다.
그들도 논리가 있기는 하다. 다산 정약용, 안정복, 김정호 등 실학자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몇 권의 중국 역사서에 기반하여 우리역사를 왜곡(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었고, 箕子가 한민족을 개화시켰다는 논리)시켜 일제 시대 및 지금도 주류 역사학에서는 유용하게 쓰고 있다.
자국의 역사를 비하하기에 딱 좋은 소재이기도 하며, 조선 후기에 이미 중화에 물든 역사가 있기에 일제 시대에 만든 역사가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중국 정사는 25권이 있는데, 오로지 몇 권만 예를 들어 주장한다.
다른 중국 정사에는 한사군은 요서에 있다는 것과, 패수(대동강)는 서에서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있음에도, 현재 대동강(동에서 서로 이동하여 바다로 들어감)을 패수라 우겨된다.
한자 豆가 3천6백 년 전 소리가 '독'이라고 미국 및 프랑스 학자가 밝혔지만 위의 경우처럼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음으로 대중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비로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豆'는 그릇이었고, 소리는 '독'이었음이 확실하다. 이유는 우리가 아직 '독'을 그릇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