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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契)'은 '새기다, 자르다'에서 나왔다.

by 뿌리를찾아서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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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이란 단어는 언제 생겼을까?

우리말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은 아쉽게도 15세기 이전에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고려시대에 중국 송나라 사신이 지은 '계림유사'에 삼백 오십 아홉 개의 단어가 남아 있어 그나마 아쉬운 점을 달래 주고 있다. 계림유사는 송나라 '손목'이라는 사람이 1103년 사신으로 왔다가 고려의 풍속 및 언어를 기록한 내용이다. 

여기에 '馬'의 그 당시 소리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현재 '말'이라고 하고 '말하다'의 '말'과 동음이의어로 쓰인다. 과연 고려시대에도 '말'이었을까? 답은 지금과 같이 '말' 그대로 쓰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말하다'의 '말'도 그 당시 같이 쓰였을 가능성은 더더욱 농후하다. 일부에서는 우리말이 15세기만 가도 외계어처럼 현재와 정말 동떨어진 말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계림유사'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글'이란 단어는 '말'과 짝을 이룬다. 쓰인 '글'과 읽는 '글' 그것을 입으로 뱉는 '말'은 언어에 뼈대이자 영원한 짝꿍이다. 이런 전제로 우리말 '글'도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소리라 말할 수 있다.

2.  '글' 소리의 근거를 찾아서

지금은 고인이 되셨고 인제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낸 한문학자 '진태하 교수'의 책 <한자는 우리의 조상 동이족이 만들었다>에 '글'이라는 연원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글의 갑골문자
<한자는 우리의 조상 동이족이 만들었다>159페이지 발췌

상기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칼로 나무나 돌에 숫자를 새기는 것에 출발한 글자가 '契(계)'이며, '글'을 뜻한다. 한자 사전에 보면 이외에 '자르다, 새기다, 약속' 등의 뜻이 나열되어 있다. 발음 또한 '글, 결, 설, 계'로 다양하게 쓰인다. 도대체 이 글자에 왜 이렇게 많은 뜻과 소리가 붙어 있는 걸까? 특히 '자르다, 새기다'는 왜 뜻에 포함된 걸까? 

지금까지는 몇몇 사람 외에는 이런 내용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글'은 현재 '쓰다'인 동사가 붙지만 고대에는 '새기다'가 붙었다. 붓이나 필기구가 없이 돌이나 나무에 조각을 한 자체가 '글'이었기 때문이다. 조각은 자르고 새기는 것을 포함한다. '글'의 원천적인 어원은 '자르다, 새기다'가 되어야 합리적이다. 다행히 이 글자에  그런 의미가 아직 포함되어 있다.

우리말에는 '새기다, 자르다'의 의미를 포함한 단어들이 꽤 존재한다. '긋다, 끌' 등이 그 단어들이며, '긋다'의 방언으로 '것다'가 있다. 契가 태어난 배경은 나무나 돌에 선을 그어 반으로 자른 후 약속을 지키는 자리에서 그 자른 부위를 맞춰보는 행위에서 출발했다. 자연히 '긋'과 약속이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 

契의 갑골문자는 하기와 같다. 수많은 학자들이 契의 갑골문자 소리가 하기와 같다고 하였다. 우리말로 음역 하면, '귿, 긋'으로 읽힌다. 그냥 우리말 자체가 갑골문자 소리라고 밝힌 것이다. 다만 우리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아무리 고증적으로 중국어로 契의 기원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지 않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契의 갑골문자 소리 1
契 갑골문자 소리 1
契의 갑골문자 소리 2
契 갑골문자 소리 2

契는 원래 아래 부분이 큰 大가 아니라 나무 木이었다. 글자가 변천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붙은 소리도 원래는 '귿, 긋'이라는 원초적인 소리가 '글, 계, 설' 등으로 변한 것이다. 참고로 '설'로 읽힐 때는 '갑골문자'를 만든 상나라(은나라)의 시조를 뜻한다. 

우리말이 상당히 시계열적으로 어원 그 자체를 보존하였다는 점을 이 글자가 보여준다. 원초적 행위 '긋다'라는 행위에서 좀더 발전된 '글'이 나온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글'이 왜 '자르다, 새기다'와 연관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을 좀 더 심각하게 우리 학자들은 받아들여야 하는데 도무지 이쪽으로는 발길을 들이지 않는다.  

글자의 기원은 '새기고 긋는 행위'에서 출발했다. 전세계 모든 언어가 다 그렇다. 그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한국어가 최소한 갑골문자의 기원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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