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曲’은 우리가 알기로는 ‘굽다’의 뜻이고 ‘곡’이라는 소리이다. 이 글자는 무엇인가를 상징하는 모양이다.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좀 더 글자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집중하면 어렴풋이 하나의 물건이 떠오른다. 네모난 사각형 가운데 선이 하나 있고 두 개의 가로 선이 있다. 과연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굽다'라는 직접적인 상징은 아니다. '피카소'가 한 때 갑골문자에 몰두한 것도 이런 상상력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 상상력은 그의 그림에 일부 녹아있다. 아래는 曲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부터 시작되어 오른쪽 모양으로 변하였다. 현대의 曲과 가장 비슷하다. 갑골문자는 맨 왼쪽에 있다. 무엇이 굽어 있는 모양이다. 갑골문자가 뜻하고자 했던 것은 바구니였다. 대나무나 각종 연한 나무줄기등을 굽혀 만든 바구니를 표현한 것이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 보면 하기와 같이 표현되어 있다.
"대나무나 싸리로 만든 바구니 모양의 굽은 모양을 본뜬 글자로 '굽다'를 뜻함. 曲은 <ㄴ ㄷ u>와 같은 모양을 한 도구나 그릇. 그릇>굽히다>굽다>작은 변화가 있는 일을 나타냄." 정확히 짚었다. 이 글자의 핵심은 '그릇'이다. 그릇과 바구니가 구분되지만, 구글 검색창에 '대나무 튀김 그릇'이라고 치면 '튀김 바구니'가 같이 뜬다. 그만큼 현대생활에 있어서도 그릇과 바구니는 밀접하다. 고대에도 같았다. 구분하지만 같은 생활 도구였다.
그럼 갑골문자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곡'이었을까? 아니면 '곡'과 비슷한 소리? 3천6백 년 전의 소리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설문해자(AD 1세기 허신 편찬), 수나라(서기 601년) '절운' 등을 통해 역으로 추적한 결과물이다. 여기에 수많은 학자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연구물들이 많이 나와 있다.
여기서 참조할 사람들은 '벡스터(미국 언어학자)와 사가르트(프랑스 언어학자)'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밝힌 소리는 kʰrok이다. 우리말로 음역 하면 '그록, 그럭' 정도의 소리다. 우리말 그릇의 방언이 '그럭'이다. 3천6백 년 전의 소리를 우리는 아직도 쓰고 있다. 원래 창조된 글자의 뜻 및 소리를 우리는 그대로 쓰고 있다.
그릇은 15세기에도 '그릇'이었다. 물론 그 이전 기록은 없다. 하지만 다른 단어들의 변형유무를 파악하면, 충분히 '그릇'은 그 이전에도 '그릇'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계림유사에 보면 '오다'의 명령형 '오라'도 현재와 같다. 그리고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모시'도 모시였다.(계림유사 연구, 진태하)
계림유사는 북송의 봉사고려국신서장관이던 '손목'이 1103년에 고려를 방문한 후 고려의 조정제도, 풍속 및 고려 방언 360여 개 어휘를 기록한 책이다. 지금부터 천여 년 전 단어가 지금과 같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릇도 '그릇'으로 볼 수 있다.
더 확실한 증거는 曲에 담겨 있는 뜻이다. '굽다'외에 '그릇되다'라는 뜻이 있다. 왜 '그릇되다'의 뜻을 지녔을까? 단순히 "굽은 것은 모두 그르다"라고 생각하여 "나이가 들어 굽은 허리를 지닌 노인들은 다 그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굽다'에서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확장은 있어도 '모양'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曲이 '그릇되다'가 된 것은 갑골문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그릇'을 뜻하는 '그럭(록) 또는 그릇' 소리가 있었고, 동시에 '그릇되다'라는 표현도 있었기 때문에 이 글자에 '그릇되다'가 포함된 것이다.
또 다른 뜻이 하나 있는데, '가락'이다. '노랫가락, 자루(바구니)의 방언, 농기구로 두 개의 나뭇가지로 만든 집게 가락' 등으로 우리말에는 '가락'이 다양하게 쓰인다. 왜 曲에 '가락'이 있을까? 바로 '그럭(록)'과 소리가 들릴 때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락은 '자루'의 방언이기에 자루를 뜻하는 소리가 '그럭,그록, 가락,그릇' 등으로 그 당시 통용되었다고 판단된다.
曲은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언어 DNA를 발현시킬 수 있는 단어다. 초기 농경에서 필요한 '자루, 바구니, 그릇, 가락'을 뜻하고 있고, 3천6백 년 전의 모든 소리 '그럭, 그릇, 가락 등이 한국어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일한 소리 다른 뜻의 '그릇되다'가 포함됨으로써 의미가 전이된 것을 볼 수 있으며, 노랫가락이라는 의미로도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기의 모든 것이 漢子가 韓字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