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卜은 의성어(onomatopoeia)이자 갑골문자 전체를 대변한다

by 뿌리를찾아서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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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卜은 갑골문자 전체를 대변한다.

복(卜)이라는 글자 하나가 갑골문자 전체를 대변할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15만점이 출토되었고 4천자 정도가 해독된 갑골문자의 우두머리 격인 글자가 복(卜)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갑골문자 대부분이 殷나라 대소사에 대해서 점을 치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卜 은 점치는 것을 의미하기에 충분히 갑골문자를 아우르는 대표자격이 있다. 참고로 이미 殷시대에 육십갑자가 있었다. 예를 들어 辛未卜(신미복), 貞(정) 往逐豕(왕축시) 獲(획) 이라는 뜻의 갑골문자가 쓰여져 있는데(현대 한자가 아니라 갑골문자를 보고 현대 한자로 변환을 시킴), "뜻은 辛味일에 묻습니다. "貞(정)은 점을 치는 사람의 이름이다." 뜻은 돼지(豕)를 사냥하려는데(往逐豕), 잡을 수 있을까요?(獲)"(출처:갑골문자 그 깊이와 아름다움,도서출판 서예문인화, 양동숙 교수)

 

이렇듯 갑골문자의 기사는 전부 점을 치는 내용이다. 그럼 육십갑자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연히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주역학자 이응국 선생의 의견을 빌리면 삼황오제중에 황제가 "靑丘(청구)를 유람하다 풍산을 지날 때에 자부선생을 만나 삼황내문(역법의 시초)을 받았다"고 한다. 더 확실한 증거로 그는 중국의 서량지라는 학자가 주장한 내용을 꺼낸다. "역법은 실제 동이에서 창시했다(중국사전사화)"가 그 내용이다. 그리고 실제 청구는 동이의 영토이며, 자부선생도 동이족이기 때문에 역법은 당연히 동이족에서 나왔다는 내용이다.

 

점을 친 모든 날짜는 육십갑자로 기록되어있다. 돼지를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점에도 육십갑자가 적용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멧돼지로 인해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한다. 농경이 꽃을 피울 시절인 3천 6백 년 전, 또는 그 이전, 멧돼지를 잡는 것은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고 육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에 당연히 점을 치고 결과를 보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행사라 할 수 있다.

 

점의 결과는 딱 하나였다. 점을 칠 내용을 새기고 홈을 파서 막대기에 불을 붙여 달군 뒤 불을 끄고 지진 후 卜모양이 나오면 점사의 결과를 긍정으로 판단했고 아니면 부정으로 판단했다.

2. 卜은 '뽁'에서 나왔다

卜의 갑골문자 소리는 'pog'라고 중국 학자 '정창'이 밝혔다. 음역하면 우리말 '복'이다. 과연 '복'과 卜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갑골문자의 대가인 숙명여대 양동숙 교수의 의견을 보면 달라 질 것이다. 참고로 양동숙 교수가 갑골문자가 한국어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卜의 갑골문자는 아래와 같고 옆 가지부문이 위로 향해있을 뿐이다.

卜의 갑골문자
卜의 갑골문자 그림

그의 의견은 "불로 지질 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거북이의 배면에서 '뽁'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卜자에 '복'이라는 소리가 붙었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뽁'소리는 우리말 의성어다. 중국어 사전에는 없는 소리다. '뽁'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1. 보드랍고 무른 물건의 거죽을 세게 갈거나 긁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복'보다 센 느낌을 준다.

2.두툼한 물건이나 조금 질기고 얇은 종이, 천 따위를 세게 찢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복'보다 센 느낌을 준다.

 

중국 사회과학원 학자였던 '정창'이 밝힌 'pog'소리 그대로다. 우리말 '복'과 '뽁'은 소리는 달라도 같은 뜻이다. 의성어이기에 소리의 진폭이 달라도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다. 한국어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기도 하다. 

 

3천 6백 년 전 점을 칠 때 새긴 卜의 소리는 '뽁'이었다. 그럼 그 당시 이 상형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누군가? 당연히 '뽁'이라는 의성어를 쓴 사람들이어야한다. 지금 우리가 '뽁, 복'을 쓰고 있다. 불로 지지고 쪼개지는 소리를 들리는 대로 기록한 문자가 卜이다. 

 

卜을 연원적으로 의성어로 연결시킬 수 있는 언어는 유일하게 한국어다. 따라서 이 글자는 한국어를 쓴 사람들이 만들어야 맞다. 결코 중국인들이 만든 문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공자가 '인의예지신'을 논하기 천 년 전, 아니 그 이전에 쓰던 소리가 '뽁'이었다. '뽁'이라는 소리를 이미 쓰고 있는 상황에서 점을 칠 때 나는 소리와 같기에 卜에 소리를 붙였다. 

 

공자가 동이족이건 화화족이건 중요하지 않다. 또한 周나라가 殷을 멸망시킨 후 조선의 제후로 임명한 箕子도 중요하지 않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전부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된 소설에 불과하다. 그 요리에 아주 맛갈나게 양념을 하고 여러가지 재료를 덧 붙여 더 맛있게 먹은 사람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의 일본인들이었다. 이런 요리들을 철썩같이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재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이다. 

 

하지만 이런 요리들을 다 가져다가 버릴 수 있는 글자가 卜이다. 중국인들이 역사를 음식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를 시작한 시점은 漢나라 시대부터다. 대표적인 인물은 史記를 지은 '사마천'이다.

 

연암 박지원이 18세기에 북경근처 '열하'를 방문하고 남긴 '열하일기'에 박지원이 필담으로 청나라 유학자 '곡정'과 나눈 대화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열하일기, 박지원 지음, 이가원 옮김, 명문당) 

 

연암 박지원이 " 사전(사마천 사기를 말함)에는 箕子가 조선으로 피해 올 적에 詩(시), 書(서), 禮(예), 樂(악)을 가져왔다"고 하니 청나라 유학자 '곡정'이 이와 같이 말한다. "이것은 본래 중국에서 신기한 일 꾸미기를 좋하하는 선비들이 꾸며서 억지로 끌어다 만든 말이다. 예를 들어 '箕子朝鮮本(기자조선본)'이란 기자가 조선에 봉해질 때부터 전해 오던 고문인데 원나라의 학자 '왕추간'이 '중당사기'라는 책에서 위작이라고 밝혔다."

 

연암 박지원조차도 箕子를 신봉했고, 기자가 우리 선조들을 개화시켰다는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필담 내용에 연암 박지원이 "고구려'라는 나라가 무력을 숭상하고 약탈을 좋아한다"는 내용도 있어 놀라기도 하였다. 그만큼 세뇌는 무서운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것에 대해 자랑을 하면, 그 자체가 '죄'가 되거나 '국수주의, 유사역사' 등등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비난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글자가 卜이며, 우리말 의성어 '뽁(복)'의 위력을 실감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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