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앞장에서 시(時)의 갑골문자 기원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時)는 우리말 '떼다'의 어근 '떼'와 연관된다는 것을 밝혔다. 비록 갑골문자의 표현은 땅에서 떼어 낸 '풀이난 식물의 '떼'를 빗대었지만, 주된 목적은 시간 '때'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시간의 '때'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떼다'의 '떼'로 상형문자를 만들었다. 시간의 '때'가 이미 쓰이던 소리였지만, 상형화 하기가 난해했기에 대신 '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時의 소리는 '시'지만, 갑골문자가 태동하던 시기에는 '떼(때)'였다. 이런 이유로 한국어가 한자(漢子)의 기원이라 했던 것이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때'가 수천 년 된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혹시 구체적인 것이 궁금하다면,
본 사이트에 '때가 시의 3천6백 년 전의 소리다' 기재된 내용을 참조하면 된다.
본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한국어가 담고 있는 심오한 철학적 배경이 같아 잠시 '떼'의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 뇌리에는 시간은 흘러가는 것으로 새겨져 있다. 과거, 현재, 미래 등으로 구분 지을 때 그 기준점은 시간이기에 합리적인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에서는 그 개념이 흔들리고 있으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이자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카를로 로벨리'가 지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가 그 시발점이다. 그는 우주론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으며, 동시에 제2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칭호도 붙여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 물리학자의 책 제목을 끄집어 낸 이유는 '시간의 개념' 때문이다. 한국어로 되어 있는 時의 고대 소리는 '떼(때)'였다. '떼다'와 '때다'는 같은 소리 같은 뜻이다. 강원도 방언으로 '때다'는 '가르다'로 '무엇을 쪼개고 떼어 내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떼와 때는 같았을 것이다.
고대 우리 선조들은 "시간은 떼어 내는 것'이라는 물리적, 철학적 배경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떼'가 '때'로 연결된 이유이기도 하다. 구분하고 쪼개고 떼어내는 것이 시간이라는 원리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떼다'로 '떼'로 시간의 의미인 '때'를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라는 소리 및 뜻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그의 책에서 '시간의 양자화'를 언급했다. 양자화를 언급하기 이전에 '시공간이 중력장이고 중력장이 시공간'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시간도 입자처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자로 된 최소 값은 10의 마이너스 44초다. 상상할 수 없이 작은 값이며, 보통 '플랑크 시간'이라 부른다. 시간은 연속적인 값이 아니라 각각의 값이 항상 있고 한 값에서 다른 값으로 이동시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양자도약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시간은 쪼개진 값이며, 결코 연속적으로 흐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흘려보내는 시간도 각각의 시간 입자값이 도약을 하면서 새로운 값으로 이동 중이지만, 결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흐름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부문이 우리 선조들이 생각했던 개념과 일부 겹친다. 그 개념은 시간을 떼어 내는 것이기에 時의 갑골문자에 '떼'를 붙였다는 것이다. 단지 "땅에서 풀이나 식물 뿌리를 떼는 모양으로 상형화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소리는 같다.
2. Time의 기원
영어에도 당연히 시간을 뜻하는 단어가 존재한다. 바로 'Time'이다. 이 단어의 뿌리는 라틴어, 그리스어에서 나오지 않았다. 훨씬 이전에 존재하던 인도유럽어가 뿌리며, 지금으로부터 6천 년 전의 언어로 서양 언어의 뿌리라고 모든 언어 학자들이 인정한다. time의 시발점은 인도유럽어 'da'이며, 뜻은 "무엇을 떼어내어 구분하다"라고 서양 언어학자들이 이야기한다.
이쯤에서 우리말 '따다'를 생각해 보자. '따다'의 어근 '따'를 영어로 음역하면 'dda'이다. 앞에서 설명한 時의 갑골문자 소리는 'də, djɯ' 등이다. 우리말 '떼다, 떠, 뜨다'의 어근 'dde, ddə, ddjw'의 부드러운 소리다. 현재도 우리말 쌍자음은 영어로 음역하기가 난감하다. 소리의 맛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갑골문자를 연구한 학자들이 이 정도로 밝힌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말이 한자의 시원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어의 어원 'da'도 '따다'의 '따'로 보아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우리말 따다는 "물체의 한 부문을 떼어 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 소리로 영어의 뿌리와 한자의 뿌리가 다 설명된다. 다른 각도로 보면 우리말 한국어는 신석기시대 언어의 발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신석기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는 "해가 뜨는 것은 아침을 알리는 신호이며, 어두운 밤을 떼어내는 사건이었다." "달이 뜨는 것은 저녁을 알리는 신호이며, 밝은 낮을 떼어내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개념을 생각해 낸 시기는 빙하가 녹기 시작한 1만 2천 년 전일 것으로 생각된다. 문명의 태동기이기도 한 시점이다. 여기에 철학적 바탕을 더하면 바로 영어와 한자의 기원이 설명된다. "뜨는 것은 떼는 것과 같다."가 바탕이 된다. 우리말은 '떼다, 떠, 뜨다' '떼어 내다'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더 중요한 바탕은 '뜨다, 떠'는 해와 달의 움직임인 하늘 위로 올라온 상태를 말하면서, 물체에서 일부문을 떼어 내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시간은 이런 바탕에서 떼어 내는 것이 된 것이다.
현대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가 그의 책에서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 선조들은 이미 그 물리학적 개념을 이해한 것이다. 이를 언어로 표현하였고, 인도유럽어, 한자 등의 근간이 되었다.
전 세계에 이런 철학적이고 물리적인 바탕을 소리로 표현한 언어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