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간을 떼다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하여 시간은 빅뱅 이후 시작된다.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공간도 빅뱅 이후 생겨났다. 시공간이 한 점에서 태어난 것이며,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진보된 현대 과학이 밝혀낸 위대한 업적이기도 하다.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는 빅뱅을 인정한다.
시간의 흐름, 무한한 공간으로 이뤄진 어두운 우주, 그 우주 속에 빛나는 별들은 과학을 넘어 인류의 지혜와 감성과 결합하여 문학의 소재로 이어진다. 그만큼 우리는 시간, 공간에 익숙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고대인들은 우리만큼 시간과 공간에 익숙했을까? 수천 년 전 고대 인류에게 공간은 이동과 연결되었다. 그럼 시간은 무엇과 연결되었을까? 시간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연결되었다. 해가 뜨면 아침이고, 지면 저녁이다. 달이 뜨면 저녁이고 달이 지면 아침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생각을 가졌다. 수렵채집 활동에서 농경이나 유목생활로 바뀌면서 해와 달은 중요한 시간의 지침서와 같았다. 제임스 C. 스콧이 지은 '농경의 배신'이라는 책에서도 일부 다루고 있지만, 해와 달을 보며 농경을 시작한 이래 인류는 오히려 자연에 속박되었다. 자유로운 수렵채집 생활이 아니라 이제 자연의 순리에 적응 또는 속박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을 그는 농경의 배신이라 하였다. 이로 인해 '시간'은 고대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된 것이다.
은나라 갑골문자에 이미 60년이 한 주기인 육십 간지가 새겨져 있다. 이미 은나라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60간지는 시간의 흐름을 그려 넣은 것이다. 천간, 지지의 조합으로 60개를 산출한 시간의 흐름표다. 청동기 시대에 이미 60진법으로 시간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육십간지도 해와 달의 현상에 비롯된 것이고, 24절기도 그렇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를 아울러 이미 시간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간접 증거이기도 하다.
당연히 시간을 표시하는 문자도 있었다. 갑골문자 시기는 청동기 시대라 신석기시대의 문자를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을 뜻하는 소리는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갑골문자인 아래 그림이다.
시(時)가 여기서 나왔다. 언뜻 보아서는 땅에서 파낸 풀의 ‘떼’와 같다. 이 그림의 해석은 각양각색이다. 네이버 한자 사전에는 위에 있는 그림을 그칠 지止, 아래 그림을 날 일日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뿌리가 같이 뽑힌 풀의 떼처럼 보인다. 이 글자의 갑골문자 소리는 ‘də와, djɯ’ 두 개가 있다. 앞에 것은 미국, 프랑스 학자인 벡스터, 사가르트가 밝힌 것이고, 뒤에 것은 중국 학자 절창이 밝힌 소리다.
우리말로 음역 하면,더(떠, 떼), 드(뜨)어, 등으로 소리 낼 수 있다. 영어로 표기한 이유는 범용적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갑골문자의 소리가 이렇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현재 한자 소리인 ‘시’와는 천지 차이다. 시(時)의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따져 올라가면 최종으로 나오는 글자는 갈 지之다.
2. 떼는 때다
時에서 소리를 담당하는 글자는 절 사(寺)이고 사(寺)에서 소리를 담당하는 글자는 지(之)여서이다. 之의 갑골문자는 아래 모양이었고, 소리는 ‘tə’(더, 떠, 터) 또는 ‘tjw’(드으, 뜨으, 트으)다. 소리의 변천은 之에서 寺로, 다시 寺에서 時로 간 것이다.
갑골문자 소리는 벡스터(미국 학자), 사가르트(프랑스 학자), 정창(중국 사회과학원 학자) 등이 밝힌 내용이다. 뜻은 ‘가다’였다. 이유가 그칠 止에 날 일(一)_오른쪽으로 삐져 나온 모양_의 결합인데, 一 뜻은 시작하는 장소를 뜻하고 止가 발을 의미한다. 즉 “첫 발을 떼다”로 ‘가다’를 뜻한다. 신기하게도 時의 소리는 ‘가다’를 뜻하는 소리 ‘떼’에서 온 것이다. 현재 한국어 사전에도 ‘떼다’는 ‘걸음을 옮기어 놓다’로 설명한다. 之의 갑골문자의 기원도 한국어다. 혹시 ‘tə’가 '떼'와 상관없다고 느낀다면, "야 빨리 떠"라는 일상적인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떼다'는 '떠'(ttə)와 같다. 빨리 자리를 떠야 하는 것은 이동하는 것이고 발걸음을 채촉하는 것이다. 't'가 하나 빠져서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말의 소리 진폭의 위대함을 상기해보면 된다.
여기까지 파악했다면, 우리말 '때"가 생각이 날 것이다. 원래 갈 之(지)의 소리는 '떼'였다. 이 소리가 최종적으로 時(시)에 전파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자가 만들어진 시기에 이미 움직음을 나타내는 '떼다'의 어근 '떼'와, 현재 시간을 나타내는 '때'가 있었다. 之가 나올 때 "떼'라는 소리를 붙였고, 나중에 時가 만들어질 때 '때"라는 소리를 붙였는데 글자 구성에서 之의 소리가 '떼'였기에 부수로 포함된 것이다. 이런 복잡한 소리 체계와 의미를 가진 시(時)를 과연 현재 중국어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첫 번째로 소개한 時(시)의 갑골문자가 마치 흙이 붙어 있는 식물의 뿌리를 떼어 낸 '떼'로 보인 것이 크나큰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원시적으로 풀어보면, 갑골문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미 '떼, 때'를 사용하고 있었다. 갑골문자를 만들고 나서 시간을 나타내는 '때'를 표현하기 위해서 같은 소리인 '떼'를 표현한 것이다. 시간을 표현하기는 상형문자로 사실 힘들다. 반면 같은 소리인 '떼'를 사용하면 쉽게 소리를 전달할 수가 있었다.
之의 소리도 '떼'였기에 후대에 時를 뜻하는 갑골문자가 보다 정형화(대전, 소전, 예서, 해서) 되어 갈 때 추가된 것이다. '떼, 때'를 사용한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이었다. 한편 (사)寺는 '절'이다. '절'은 '떼다>뜨다>뜰>들>절'로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 寺의 고대 소리도 'tjw'였고, 그 이전 수나라, 당나라 시대 소리는 'ziH'였고, 이는 wikitionary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phonetic(소리 부문)은 tjw라 설명하고, 최종음은 다른 소리를 붙인 것이 한국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벌어진 경우이며, 이런 해석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가 중간에 변화된 한자음을 차용했을지언정, 원래의 소리는 우리말 소리였다. 이런 배경과 증거가 넘치는데, 어찌하여 한자가 우리말과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時의 원 발음은 '때'이며 영락없는 우리말 소리 그대로이다. 가장 원초적으로 갑골문자 소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 왜 갑골문자 연구는 하지않고 한국의 학자들은 계속 차용이라는 말만 거듭하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인구가 늘고 집단적 생활을 위해 농경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자연에 순리에 속박되어 인류가 발전했다면, 우리는 집단의 이기주의적 생활을 위해 중국을 신봉하기로 결정했고 그로 인해 중화주의에 속박된 기생적 기득권 세력을 잉태했다. 자생적 기득권 세력들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과 기생적 기득권 세력이 대중을 지배하는 것이 별반 다르지 않지만, 기생적 기득권은 대중의 영혼마저 빼앗아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 일을 자행한다. 중국과 일본은 자생적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는 기생적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다. 때로는 중국, 때로는 일본에 붙어서 스스로를 져버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농경의 배신'이 아니라, '후손의 배신'이라는 책을 누군가가 내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