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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를 뜻하는 寒(한)의 원래 소리는 '차다'의 어근 '차'였다.

by 뿌리를찾아서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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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를 뜻하는 한자는 寒(한)이다. 이 글자를 보고 순식간에 '춥다'를 연상한다면 아마 천재일 것이다. 한자가 아무리 상형을 바탕으로 생겨났지만, 그 안에 내재된 추상성과 시간에 따라 형성된 인위적 조합 때문에 현재의 글자만 보고서는 추측하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寒을 열심히 본다고 해도,  춥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중국어 발음은 han인데, 당연히 중국사람들도 왜 이 글자가 '춥다'를 뜻하는지 알 수 없다.

 

잠깐 눈을 돌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날 때를 생각해보자. 현생 인류는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각지로 이동했다. 그 기나긴 이동의 시간 속에 그들 중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한 일부는 거대한 빙하를 보았다. 마지막 빙하기는 11만 년 전에 시작하여 1 5천 년 전에 끝났기 때문이다.

 

이동한 현생인류는 추위와 싸워야 했고, 이미 거주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경쟁해야 했다.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도 있었지만, 경쟁의 대상이었다. 추위를 놓고 오히려 신체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이 더 우세하였지만, 결국 호모사피엔스만이 살아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지만, 그 중 인상적인 것은 바늘의 발명이다. 바늘로 만든 옷이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에 섰던 것이라 설명한다.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이 전부 추위로 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호모사피엔스는 추위를 극복한 후 더 용이한 방식으로 종족을 보존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바늘의 발명시기에 그들은 춥다라는 말소리를 공유했을까? 바늘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만 사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충분히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 상황을 공유했을 것이다. 바늘의 사용 목적이 추위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 다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춥다는 느낌을 말소리로 표현을 했고, 그 표현이 통일된 소리로 이어졌다는 생각은 합리적이다. 추운 느낌의 소리는 현생 인류가 세계 각지로 퍼져 가면서 달라졌다. 우리가 쓰는 춥다, 추위, 차갑다 등의 소리도 현생 인류가 쓰던 소리에서 나왔을 것이다. 

 

현생 인류는 동아시아에 6만 년 전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4 5천 년 전에 왔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충청북도의 한 굴에 4 5천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 유골이 있다는 발표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그 당시 육지였던 서해 대평원 및 현재 중국의 서해안 지역, 발해, 한반도에서 통용되던 추위를 뜻하는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아쉽게도 우리는 몇만 년 전의 소리를 추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천 년 전에 사용했던 소리는 한자의 원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寒의 상형은 주周나라가 수도를 옮기기 전 서주시대 것이다.

寒의 원형
寒의 원형

사람이 추워서 풀숲을 깔고 어느 공간에 있는 모습이다. 주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殷나라의 문자와 문화를 계속 이어받았다. 당연히 그 시기에 쓰던 말소리도 은나라의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자가 태어나면서 붙여진 소리는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소리를 붙인 것이다. 

 

그러면 고대의 소리는 무엇일까?  그 소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리인 ‘찬 또는 차’와 비슷한 소리다. 갑골문자 및 고대 한자 소리를 연구한 벡스터와 사가르트트가 찾은 소리는Cə.[ɡ]ˤa[n]이다. [ ]의 소리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의 소리를 포함해서 읽어보자. ‘처가안’인 된다. 우리말 소리 ‘차가운’과 거의 같다. 이번에는 빼고 읽어보자. ‘처아’가 된다. 우리말 ‘차다’의 어근 ‘’에 닿는 소리다. ə의 소리는 a일 수도 있다. 3천 년이 더 된 소리를 밝힌 것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믿을 수 없고 엉뚱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3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 소리가 전혀 우리말 소리 범주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벡스터와 사가르트가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찾은 것이다. 단지 한국어를 거론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럼 왜 우리는 변질된 한자 소리를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독일의 생물 물리학자인 슈테판 클리언의 책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월함을 이기는 우연한 승리”, “더 잘난 놈보다 더 많은 놈이 이긴다.”  이 한 구절이 답이다. 우리 선조들은 우월했지만 중국인들의 숫자에 밀렸다.

 

우리 東夷족 선조들은 문화적으로 우월하고 갑골문자를 만들어 전파했지만, 나라를 이루는 최대 구성원의 수가 적었다. 周나라 및 다른 제후국들의 인구 증가 속도도 우리 선조들인 東夷족 국가보다 빨랐다. 결국 우월한 殷나라였지만, 우연한 작은 실수로 멸망하였다. 그리고 치명적인 것은 인구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周나라가 西와 東으로 나뉘기 시작한 시점에 시작된 춘추시대 그리고 이후 전국시대까지는 東夷족 국가들이 건재하였다. 또한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까지는 여전히 대륙에서 동이족과 한족이 치고받는 싸움의 과정이었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유민들을 산동에서 현재 산시성 시안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마치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 변방으로 보내진 것처럼 이와 같은 일이 이미 천 7백 년 전에 벌어졌었다. 주나라가 은나라의 유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것은 여전히 은나라를 따르는 거대 집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진나라가 漢나라에 의해 멸망하였고,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면서 모든 역사는 뒤집어졌다. 비록 고구려,백제, 신라가 대륙을 호령했음에도 한자가 조상들이 만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삼국이 건국된 기원전 수십 년 시점에서 무려 시간을 천 5백 년 전으로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에 신진사대부가 등장하고 조선이 건국된 이후 서서히 우리의 찬란한 고대 역사는 중화사상에 묻혀갔고, 조선 후기 들어 자발적 소중화사상이 휘몰아쳤다. 이런 와중에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우리 역사는 그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다.

 

현재 가장 일본에 고마워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일본에 의해 조작된 역사를 정설로 받아들여 이제는 중국의 입맛(동북공정)에 맞게 역사를 요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입맛을 위해서 우리 주류 역사학자들 및 정치인들은 열심히 우리 역사를 요리하여 중국 및 일본에게 갔다 바치고 있다. 이는 좌파 우파 상관없이 둘 다 고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다. 철저하게 중화를 따르거나, 완벽하게 일본을 추종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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