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봄, 매사추세츠 주의회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의회 의원들이 새 선거구 지도를 펼쳤다. 그해 인구 조사 결과를 반영해 선거구를 다시 그려야 했다. 단순한 행정 작업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격렬한 정치 게임이었다.
당시 주지사는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 64세,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자 중 한 명, 민주공화당 소속. 그의 임기 동안 의회는 민주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 연방주의자(Federalists)가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컸다. 인구 변화가 그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선거구를 다시 그려서 자기 당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
게리와 민주공화당 의원들은 매사추세츠 지도 위에 선거구 경계를 새로 그렸다. 자기 당 지지자가 많은 지역들을 묶어서 한 선거구로 만들고, 상대 당 지지자들은 흩어서 다른 선거구에 분산시켰다. 자기 당이 무조건 이기는 선거구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선거구 지도는 이상하게 생겼다. 한 선거구가 길고 굽이굽이 휘어서 마치 도롱뇽(salamander) 같았다. 길고 가느다란 몸에 머리·꼬리·발이 달린 그 모양.
보스턴 신문의 풍자
1812년 3월 26일, 보스턴 신문 〈Boston Gazette〉가 이 기괴한 선거구 지도를 1면에 실었다. 화가가 그 선거구 모양에 눈·발톱·날개를 그려 넣어 진짜 괴물처럼 만들었다.
기사 제목이 영어사를 바꿨다.
"The Gerry-mander."
게리(Gerry)와 도롱뇽(salamander)을 합친 신조어. **"게리가 만든 도롱뇽 같은 선거구"**라는 풍자였다. 도롱뇽처럼 길게 늘어진 선거구를 그린 주지사 게리의 이름을 영원히 기록한 단어.
이때부터 영어에 새 동사가 생겼다.
Gerrymander. 게리맨더링하다. 자기 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조작하다.
단어를 뜯어보면
Gerry는 사람 이름이다. 엘브리지 게리, 매사추세츠 주지사. 사람 이름이 단어가 된 사례 — 영어에서 eponym(인명 어원)이라고 한다.
mander는 salamander(도롱뇽)의 뒷부분이다. 그리스어 salamandra에서 온 단어로 고대부터 물과 불 양쪽을 견디는 신비한 동물로 여겨졌다. 신화에서 도롱뇽은 불 속에서도 살아남는다고 믿었다.
두 단어가 합쳐져 gerrymander — 한 사람의 이름과 한 동물의 이름이 결합한 정치 풍자 단어다. 영어사에서 이렇게 강력한 풍자 어휘가 만들어진 사례는 드물다.
그런데 발음이 달라졌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엘브리지 게리(Gerry)의 진짜 발음은 "게리"가 아니라 "개리(Gary)"였다. 그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면 hard G 소음 — 영어 "Gary"와 같다.
그러나 신문이 단어를 만들 때 사람들은 그 풍자가 영어 단어 salamander와 더 잘 어울리도록 발음을 바꿨다. salamander의 첫 글자가 부드러운 sa- 발음이라서 gerry-도 부드러운 j- 발음으로 통일했다.
그래서 gerrymander의 발음이 "제리맨더"가 됐다. 정작 그 단어의 주인공인 게리 자신은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자기 이름이 잘못 발음되는 것을 들어야 했다. 풍자가 그의 이름까지 바꿔놓은 것이다.
게리의 아이러니한 운명
엘브리지 게리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1812년 그해 가을, 그는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서 패배했다. 자기가 만든 선거구 조작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1812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민주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미국 제5대 부통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운명은 그를 빨리 거뒀다. 부통령 취임 1년 8개월 후인 1814년 11월 23일, 워싱턴에서 마차에서 의회로 가던 중 갑자기 사망했다. 70세였다. 정치 인생의 정점에서 갑자기 무대를 떠난 것이다.
엘브리지 게리는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자, 부통령,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역사책에 기록됐다. 그러나 일반인 대부분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만든 선거구 조작 때문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선거구를 조작할 때마다 그의 이름이 호명된다.
21세기에 더 강해진 단어
gerrymandering은 19세기·20세기에도 미국 정치의 핵심 이슈였지만, 21세기에 들어 더 강력해졌다.
이유는 컴퓨터와 빅데이터다. 2010년대 이후 정치 컨설팅 회사들이 첨단 알고리즘으로 선거구를 그리기 시작했다. 인구 통계, 투표 이력, 인종 비율, 소득 수준 —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서 자기 당이 99%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구를 그려낸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게리맨더링이다.
2010년 미국 인구 조사 이후, 공화당이 통제하던 주들이 첨단 게리맨더링을 시작했다.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 이 주들의 선거구 지도가 1812년 매사추세츠보다 훨씬 기괴한 모양이 됐다. 일부 선거구는 도롱뇽이 아니라 외계 생물체 같은 모양이다.
민주당도 자기들이 통제하는 주에서 같은 일을 했다. 메릴랜드, 일리노이 — 이 주들의 선거구도 비슷하게 비현실적인 모양이다. 이게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이다 — 양당 모두 자기 차례가 오면 똑같이 게리맨더링을 한다.
미국 대법원과 게리맨더링
2019년 미국 대법원이 게리맨더링에 대한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 Rucho v. Common Cause. 정치적 목적의 게리맨더링은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정치 게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판결로 미국에서 정치적 게리맨더링은 사실상 합법이 됐다. 각 주가 자기들 마음대로 선거구를 그릴 수 있다. 다만 인종에 기반한 게리맨더링은 여전히 위법이다. 흑인·라티노 유권자를 의도적으로 분산시키는 것은 헌법 위반.
이 미묘한 법적 경계가 미국 선거 시스템의 핵심 논쟁점이다. 같은 행위가 "정치적 동기"면 합법이고, "인종적 동기"면 불법이다. 동기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가 끝없는 법정 다툼의 주제다.
단어 안에 박힌 영어 단어들
gerrymander 한 단어를 따라가면 영어 정치 용어가 자연스럽게 박힌다.
단어 뜻 맥락
| district | 선거구 | 선거구의 기본 단위 |
| redistricting | 선거구 재획정 | 10년마다 미국에서 진행 |
| census | 인구 조사 | 선거구 재획정의 기초 |
| constituency | 유권자, 선거구 | 영국 영어에서 더 자주 |
| suffrage | 참정권 | 19세기 여성·흑인 운동 |
| disenfranchisement | 참정권 박탈 | 게리맨더링의 효과 |
| partisan | 당파적 | 게리맨더링의 핵심 동기 |
| bipartisan | 양당적 | partisan의 반대 |
| incumbent | 현직 의원 | 게리맨더링의 수혜자 |
이 단어들은 단어장에서 외워도 안 외워진다. 그런데 gerrymander 한 단어의 역사를 따라가면 9개 단어가 한꺼번에 머리에 들어온다.
인명에서 만들어진 다른 영어 단어들
gerrymander처럼 사람 이름이 영어 단어가 된 사례는 많다.
단어 유래 인물 의미
| gerrymander | 엘브리지 게리 (1812) | 선거구 조작 |
| boycott | 찰스 보이콧 (1880) | 외면하다 |
| sandwich | 4대 샌드위치 백작 (1762) | 빵 사이 음식 |
| silhouette | 에티엔 드 실루엣 (18세기) | 그림자 윤곽 |
| guillotine | 조제프 기요탱 (1789) | 단두대 |
| mesmerize | 프란츠 메스머 (18세기) | 최면을 걸다 |
| pasteurize | 루이 파스퇴르 (19세기) | 저온 살균 |
| shrapnel | 헨리 슈래프넬 (1784) | 파편 |
각 단어 뒤에 한 사람의 이름이 있다. 그 사람의 행동·발명·발견이 너무 특이해서 이름이 동사·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한국 정치에 적용되는가
한국에도 게리맨더링이 있는가. 답은 **"있다"**이다. 한국에서는 "선거구 획정"이라는 공식 용어로 부른다.
매 총선 전에 국회 의석 수와 선거구 경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 진행된다. 인구 변화에 따라 의석을 재배분하는 게 명분이지만, 사실은 여야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선거구를 그리려는 협상이다.
다만 한국은 선거구 획정 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1차 안을 만든다. 미국처럼 의회가 직접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노골적인 게리맨더링은 미국보다 적다. 그래도 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여야가 협상하면서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수정한다.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한 사람의 행동이, 200년 후 한국 국회의 선거구 협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어는 그 모든 정치 게임을 말없이 품고 있다.
한 문장으로 기억하기
1812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자기 당에 유리하게 그린 선거구가 도롱뇽처럼 생겼다. 신문이 그의 이름과 도롱뇽을 합쳐 풍자했다. 그것이 gerrymander다.
다음 선거 뉴스에서 이 단어를 만나면, 1812년 보스턴 신문 1면에 실린 그 도롱뇽 그림을 떠올리시길. 그 풍자가 200년 동안 살아남았고, 지금도 매일 정치 뉴스에서 호명된다.
영어 속 숨겨진 이야기 ⓒ wordi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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